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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가 같다는 무지한 정치인
    대구의 대현동에는 이슬람 사원(寺院)이 지어지면서 지역 주민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지역민들은 자기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될까 봐 눈물로 정부와 지자체와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집회를 하였다. 지역 주민들이 밀집하여 사는 지역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만약 교회나 성당이나 사찰을 인구 밀집 지역에 짓는다면 건축 허가를 내 주겠는가? 이 사건은 2020년 9월 대구 북구청이 이슬람에 건축허가를 내주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에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함으로 2021년 7월 공사중지가 내려졌으나, 소송까지 가서 2022년 9월 대법원이 이슬람측의 손을 들어주므로(건축주) 다시 공사가 계속될뿐더러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는 주민들의 안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건축허가를 내준 행정 기관들의 안일한 생각, 법원들의 속단, 그리고 무책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사 속개 촉구 권고 등이 지역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슬람이 다른 보편적 종교들과는 다르게 매우 폭력적이고, 일방적이고, 상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슬람이 일으킨 가장 대표적인 사건을 기억한다면, 2001년 미국에서 이슬람에 의해 일어난 9•11사태일 것이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이 자그만치 3,000여명이다. 이슬람의 무자비와 무관용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에 찬 범죄 현장이 되었다. 그것이 이슬람의 정체이며, 속내이다. 이슬람은 자신들이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고, 일부 과격한 단체들만이 그런 폭력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은 수니파이든 시아파이든 모두 폭력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경전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슬람이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도시인 대구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유명한 국립대학인 경북대학교 인근에서 일부 구성원들과 함께, 그들의 둥지를 틀려고 사원을 짓고 있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는 종교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폭력성을 드러낼 근거지가 됨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위기 상황에 지자체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낸 발언을 하여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다름 아닌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그는 보수 정치권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로 여러 번의 국회의원을 거쳤고, 경남 지사와 대권 후보로, 그리고 지금은 대구시장에 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하여 ‘이슬람의 뿌리는 기독교와 같다. 구약에서는 같고 신약부터 달라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20여년 전에 이슬람권에서 어떤 교수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이상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서로 증오하지 말고 포용하여 각자의 종교만 믿으면 됩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뿌리는커녕 아무 것도 같은 것이 없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일부 나온다고 하여, 같은 종교가 아니다. 홍 시장의 말대로 양 종교가 구약에서 같아지려면, 구약성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슬람의 경전에서 활동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인류의 구원주,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슬람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믿는 마흐메트만이 최후의 예언자라고 본다. 그런데 무엇이 같은 뿌리라는 것인가? 마치 홍 시장 아들의 이름과 다른 사람의 아들 이름이 같으니, 그가 내 아들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와 이슬람은 전혀 다른 종교이며, 이슬람의 문제점을 가리기 위하여 위장한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서구 유럽 가운데 프랑스는 1960년대 이슬람 사람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똘레랑스’(관용)을 차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은 무슬림(이슬람교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다문화주의(Multi Culturalism)가 사실상 실패하였다. 유럽이 실패한 ‘개방적 외국인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홍 시장이 대구시장이 된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에 대하여 함구하다가 느닷없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뿌리가 같다는 것도 그렇고, 각자의 종교만 믿으라는 이슬람을 두둔하는 발언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가 시장이면서도 지역민들이 위험에 처해도 이에 대한 처방은 내놓지 못하고 기껏해야 이슬람쪽에서 위장된 말로 사용되는 ‘뿌리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이슬람에 대하여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볼 수 있으려면, 지금 전 세계에서 이슬람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폭력이 없어져야 한다. 자기들끼리도 죽이고, 타종교를 핍박하고,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일이 사라져야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 이슬람을 가볍게, 보편적 종교로 보았다가는 큰코를 다치게 될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런 근거 없는 말로 주민들을 압박하지 말고, 이런 발언을 한 것을 사과하고, 정말 무엇이 대구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를 분별하여 결단력 있게 행정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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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7
  •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이 있는가?
    내부의 소수 의견을 유출하여 망신을 주는가? 진보 성향의 모 언론사의 5월 22일자 기사를 보면, 최근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이하 인권위)에서 여러 가지 논의 사항을 결정하면서, 그중에 모 상임위원이 소수 의견을 냈다고 한다. 즉 인권위의 의견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문제는, 군대에서 ‘해병대 훈련병에게 짧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인권상황 개선 권고 사안’이라는 전체적인 결정에 대하여, 이 상임위원은 소수 의견을 달면서 ‘게이(남성동성애자)들이 항문 성교를 허용함으로 항문이 파열되어 대변을 흘리는데, 이것을 인권침해라고 인권위원회가 인식시켜 주어야 하는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해병대 훈련병들의 두발(頭髮)에 대하여 인권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럼 신병들이 장발(長髮)을 하고 훈련을 받나? 이런 것들이 ‘인권 침해적’인 것이라면, 남성 동성애자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항문 성교를 통하여 신체가 망가지고, 끝내는 매우 불편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에 대하여 오히려 인권위가 권고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이해된다. 사실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삶의 질을 망가트리는 것을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권고한다면, 이보다 중요한 ‘인권 개선’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인권위는 대한민국 청년 1%가 간다는 해병대 신병들의 두발 상태를 놓고, 국가 예산으로 운영하는 국가기관이 이런 권고들이나 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그 상임위원의 발언은 내부의 압력에 의하여 결정문에서 삭제가 되었고, 더 나아가 이런 상황들이 언론과 친동성애 단체 등에 흘러나가, 그 해당 상임위원을 ‘망신 주기’와 ‘성소수자 혐오’ 표현으로 공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 위원은 다른 사안에서도 때로 인권위 전체와 다른 의견을 낸 모양이다. 그 위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를 지냈고 누구보다도 법률에 관하여 전문가인데, 그런 소수 의견을 냈다고 인격 모독을 하고 그의 인권을 박살 내려는 것인가? 적어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이라면 상당한 지위와 법적 지식과 상식이 있는 인물들로 세워지는데, 그 안에서 다른 의견을 냈다고 하여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소수 의견과 인권을 짓밟는다면, 이것이 무슨 국가인권위원회인가?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그 위원의 소수 의견에 대하여 공격받도록 유도한 것인가? 내부의 미확정 결정문 초안 내용이 알려지고, 이름을 알리고, 진보 언론들이 이를 취재하여 보도하고, 친동성애 사회단체와 인사들이 그 상임위원의 자격을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여론 재판’ ‘인민재판’과 같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에 대하여 보도한 진보 언론의 기사 뒤에 실린 댓글을 보면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알 수 있다.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면,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권위가 한참 뒤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든 게이를 치료하는 것이 인권이다’ ‘항문 성교 후유증이 변실금이라는 것이 의학적 사실인데, 왜 혐오 표현인가?’ ‘어느 부분이 혐오인가? 부정하는 자체가 혐오스러운데’ ‘비만은 건강의 위험, 흡연은 폐암의 원인이라 말하면서, 동성애의 문제점인 변실금은 알리면 안 되나?’ ‘왜 동성애가 나쁜지 온 국민이 알 권리가 있다’ 라는 격앙된 목소리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인권위는 자신들이 정해 놓은 인권 규정 안에서 마치 ‘땅 따먹기’를 하는 철없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우리 국민들의 별별 사소한 것들까지 소위 인권이라고 들이대면서, 북한 주민들의 심각하고도 절박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마치 솔개 앞에 병아리처럼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한다. 그런 기관이 아무 쓸모도 필요도 없는 것들을 마치 국가기관으로써 대단한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어 내는 듯 하다니 한심하다. 이는 한 마디로 국력 낭비이다. 정작 해야 할 동성애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은 말하지 못하고, 동성애자들의 삶과 ‘행복추구권’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오히려 그쪽 편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인권위가 사족(蛇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인권위는 제기능,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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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3-05-24
  • 탈북민을 발생케하는 북한 정권은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롭게 살 수 있나’ 탈북민의 소리 김정은은 들리지 않나 지난 7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탈북민 두 가족 9명이 작은 목선을 타고 자유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북한 주민이 목선을 타고 탈북한 것은 지난 201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은 탈북 동기에 대하여 북한의 식량난 등 경제 문제와 코로나 이후 국경을 봉쇄하고 주민 감시가 더욱 강화된 것에 대한 염증으로, 오랜 준비 끝에 결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당국의 핵개발과 실험, 장거리미사일 개발과 발사 등 아주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주민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북한 정권의 비열함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서 주민들은 도저히 정상적인 삶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 귀순한 후 정보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이곳에서 진짜 자유롭게 살 수 있느냐?’ ‘남조선에선 정말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삶의 가장 중요한 원초적 질문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이런 무지막지한 인권 유린과 정치적 탄압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전 정권에서는 오히려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는 만행(蠻行)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 탈북자들이 들어온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 2001년에는 1,043명이었고, 2006년에는 2,028명으로 2천명대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2,914명으로 최대를 기록하였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에는 1,127명으로 떨어졌고, 2021년에는 63명으로 최저를 기록하였다. 이는 북한 당국이 코로나 이후 국경 봉쇄를 한 원인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권에서 탈북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떨어진 때문으로 보인다. 탈북자를 돕고 지원하고, 북한 주민들이 외부의 정보를 얻도록 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소위 ‘김여정 하명법’으로 알려진 일명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에관한일부개정안)이 지난 2020년 12월 국회에서 표결되었는데, 187명(대부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이 표결, 국민의힘 의원은 전원 퇴장)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그리고 2021년 3월부터 이 법이 발효되고 있는데, 이런 ‘북한눈치보기식’ 혹은 ‘북한정권비위맞추기식’의 법안은 하루속히 재개정되어야 한다. 북한인권에 관해서는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7일 한국을 방문 중인 캐나다의 쥐스탱 튀뤼도 총리는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것은 한국인들이 43년전 광주 민주화운동 때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것과 같다는 것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광주민주화운동에 빗대여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또 미국의 북한인권특사(대사급)로 임명된 줄리 터너 대사는 ‘북한인권 상황은 세계에서 가장 장기적인 인권 위기’라며,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북한의 인권 유린 책임자인 김정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하였다. 문재인 정권은 유엔에서의 ‘북한인권결의안’에도 계속 불참하였고, 오직 ‘북한정권바라기’로 일관하였었다. 인권 문제는 어떤 현안보다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이는 북한 당국과의 실효성 없는 회담이나 만남, 대화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자국민의 천부적 인권 상황을 외면하거나, 이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정상적, 온전한 국가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탈북민들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내는 만행은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자국민을 돌보지 않는 정권은 곧 무너질 것이기에, 그들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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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3-05-22
  • 소위 ‘생활동반자법’ 가족 형태를 망가지게 한다​
    유럽의 혼외자 구제를 위한 법률을 따라 하다니 지난 4월 26일 국회에서는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대표발의자는 용혜인(기본소득당)의원이며, 더불어민주당의 강민정, 권인숙, 김두관, 김한규, 유정주, 이수진 의원과 정의당의 류호정, 장혜영 의원과 진보당의 강성희, 무소속의 윤미향 의원이 동참하였다. 이를 대표 발의한 용혜인 의원은 ‘생활 동반자가 기존의 가족관계와 같이 사회보장제도의 보호를 받기 위함이며, 민법을 비롯해 25개의 법을 개정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하였다. 또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받고, 사회 제도의 혜택을 받고, 가족 형태의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법률안의 출현 예고는 지난 2월에 더불어민주당의 박홍근 원내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생활동반자 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피력한 바 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이미 유사한 법률 발의에 앞장선 바 있다(진선미, 정춘숙, 남인순 등) 그러나 이것은 용 의원이 말했듯, 우리나라의 법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내용이다. 먼저 헌법을 바꿔야 한다. 우리 헌법 제36조 1항에서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되어 있다. 즉 기본적으로 가족 구성은 남녀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생활동반자법’에서는 이를 무시하여, 어떤 형태의 가족 구성원도 가능하게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법안은 ‘동성결혼법’ 통과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은 남녀간 혼인, 혈연, 그리고 입양 등으로 구성된다. 그 외에 남녀 간에 동거하며 사실혼으로 살 경우, 1990년에 제정된 ‘가사소송법’(家事訴訟法)에 의하여 정식 가정으로 인정받게 되어 있다. 또한 ‘가족’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실질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문제는 동성 간 커플이나 여러 결합을 통한 것을 가족 형태라고 주장하면서, 이들이 정상적인 가정들과 똑같은 사회적 혜택이나 사회적 보장을 노리는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을 만들려고 하는 계기는 1999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시민연대계약’(PACS)을 모방하려는 것으로 본다. 프랑스에서 이 법안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 나라에서는 혼인외 출생자가 42.7%에 달하는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혼인율은 낮아졌는데, 남녀간 동거상태에서 신생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혼인보다는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구속력이 약한 ‘시민연대계약’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 법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이 법이 만들어진 이후 프랑스에서 혼외 출산율은 2021년에 63.5%까지 크게 증가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건강한 가족의 형태로 볼 수 있겠는가? 이 제도는 계약과 해지가 한쪽의 통보만으로 가능해져, 자녀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양육이 이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또 가족과 가정이라고 해도 따뜻한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아동들이 정서적 불안정을 겪게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것을 어찌 가족과 가정이라고 볼 수 있나? 그리고 동거인들에 의한 아동 학대 등의 문제점들이 쉽게 노정(露呈)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미국 아동인권단체인 ‘뎀비포어스’의 대표인 케이티 파우스트는 ‘결혼이 가장 아동 친화적 제도’라는 말을 남겼다. 성인(成人)들이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에서 자유로운 만남과 헤어짐을 쉽게 설정하고, 그것을 가정과 같은 수준으로 인정하여 국가나 사회로부터 보호나 지원을 받으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정을 지옥으로 만드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결국 ‘생활동반자법’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들어서 그들을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 동성결혼법의 징검다리가 되는 계기가 될 것도 우려가 되고, 또한 가족제도의 해체를 가져오게 될 것은 뻔한 일이며, 그로 말미암아 아동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법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이 법안이 발의되고 나서 동성애나 이를 옹호하는 단체들이 쌍수(雙手)를 들고 환영하고 나선 것을 보아서도, 이 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과 그 방향과 목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법안은 그럴싸한 설명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가정의 해체라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과 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강력하고도 분명한 목소리가 결집 되어서 막아야 한다. 이참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서만 판단하여 일단 ‘무슨 법이라도 만들고 보자’는 식의 입법 발의를 남발하는 주체들의 자제를 당부한다. 일부 정치인들이 국가의 미래와 발전보다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허물려는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국민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냉엄한 평가가 내려져야 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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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3-05-10
  • “선악과에서 나오는 건 선도 악이고, 악도 악이다.”
    1. 선악과란? 선악과는 뿌리가 “마귀” 또는 “사람”이다. 선악과에서 “선”과 “악”이 나온다. 그럼 여기서 “선”은 우리가 말하는 “선”인가? 아니다. 자기가 규정한 “선”, 자기가 규정한 “악”이다. 선악과라는 한 나무에서 “선과 악”이 나온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선도 악이고, 그 악도 악이다.” 자기가 규정한 “선”은 무엇인가? 공로, 행위, 선행 등이다. 나중에 보면, 자기 이익을 포장한 것일 경우가 많다. 결국 “위선”으로 드러난다. 무지한 사람은 좀 더 노골적이다. “죽이고, 빼앗는다.” 자기들이 규정한 “악도 그냥 악이다.” 사람은 아무리 포장하고 발버둥쳐도 악만 나온다. 그래서 “죄 공장”이라 부를 수 있다.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선을 행하는 자는 없다. 하나도 없다.”(롬3:10-12) 2. 복음이란? 복음이란 “예수님”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2) 복음은 아들 이야기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본 예수님이다. 누가 복음은 누가가 본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복음이다. 예수님께 가면, “부활과 생명”이 있다. 예수님이 생명나무이다. 뿌리가 예수님이면, 뭐든 부활과 생명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절망의 문제를 가지고 사람에게 가면 안된다. 뭘해도 악이다. 뭘해도 죽음이다. 우리는 “양몰이 개”가 되어야 한다. 오직 예수! 예수께로 인도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나온다. 그래야 부활이 있다. 살아나게 된다. 3. 사망, 죄, 율법의 문제가 풀린다. 사망, 죄, 율법은 묶인 문제이다. 우선 “사망”은 “단절”을 의미한다. 영원과의 단절, 하나님과의 단절이 죽음이다. 원인은 죄다. 죄된 삶은 “제한과 한계”를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투쟁, 경쟁, 시기, 질투한다. 없는 집 아이처럼 살아간다. 똑똑하면 위선, 무지하면 폭력이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는 것”이다. 즉 “진단 기능”이다. 근데 진단만 하면 뭐하나? 암이라고? 파킨슨 병이라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진단만으로 복음이 될 수 없다. 치료 가능해야 복음이다. 예수님이 죽음을 깨셨다. 그게 부활이다. 죄를 멸하셨다. 그게 십자가다. 율법으로 진단한 것을 완전하게 치료하신다. 예수 나의 치료자이시다. 예수님이 다 해결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이다. 4. 이 땅에서 생명으로 사는 길. 부활과 생명의 힘으로 살게 하려고 성령을 보내주셨다. 마귀는 죄로 약점 잡는다. 늘 두렵게 한다. 늘 죽인다고 협박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가 없다. 협박이 소용없음을 선포하라. 종노릇하게 만든 모든 것에서 자유를 얻었다. 죄를 사하셨다. 죽음의 권세를 깨버리셨다. 하늘의 공급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게 복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믿음은 중심 이동이다.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이동한 삶이다. 자기 중심이면, 무조건 선악과다. 무슨 짓을 해도 악이다. 그러나 예수님 중심의 삶은 뭘 해도 유익이다. 생명이다. 반드시 산다. 이거 하나 붙들라. 나는 죽고 예수로 살라.(NIBC: Not I But Christ) 이 말씀은 언제나 살리는 구원의 밧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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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5-05
  • 언론의 신천지 띄우기가 지나치다
    신천지(신천지예수교회증거장막성전-이만희)가 코로나 때에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후, 또다시 포교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중요 일간지들이 그들의 (성경의)‘장별 계시 증거’를 강의하는 세미나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하여 광고계획을 실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국민들을 불안하고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 ‘나무위키’에 보면 이만희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1931년(92세)에 태어났으며, 기독교의 교회를 다녔다는 기록이 없다. 기독교에서 이단·사이비로 규정된 박태선의 전도관, 유재열의 장막성전, 문선명의 통일교 등을 전전하다 자신이 1984년 과천에 신천지교를 창설하였다. 이만희는 자신을 새요한, 대언자, 보혜사 성령, 약속의 목자, 재림 때의 예수와 같은 매우 참람(僭濫)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그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그가 기독교를 잘 모른다는 증거이다. 신천지는 3월부터 6월까지 세미나를 한다고 하는데, 신천지를 세운 이만희 씨는 기독교의 성경을 제대로 모르면서 성경을 강의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런 허황된 내용을 광고로 실어주겠다는 언론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언론에는 품격이 있고, 책임이 있고, 우리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진실성과 객관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단·사이비의 포교용 광고를 버젓이 실어준다면, 언론의 사명과 윤리를 크게 망각한 것이 된다. 신천지는 이미 알려진 대로 불법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여 탈세, 신도들에게 강제 헌금 및 가출 강요 등 부정부패 행위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2020년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도 방역 수칙과 어긋나는 종교활동과 조직적 은폐 등이 문제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신천지가 코로나 이후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함에, 언론들이 광고비 수입 때문에 이러한 사이비·이단의 광고를 게재한다면, 이는 반사회적, 반종교적 집단인 신천지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 세력을 키워주게 되고, 자연적으로 선량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각 언론들은 당장 신천지 광고계획을 중단하기 바라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언론 본연(本然)의 책무를 다해주기 바란다.
    • 오피니언
    • 논평
    2022-03-24
  • 한국교회언론회한국 교계의 거성(巨星), 조용기 목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
    한국 기독교와 세계 교회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용기 목사가 14일 아침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 조용기 목사는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 교계의 거성(巨星)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1958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서의 천막교회를 시작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계에서 단일 교회로는 가장 큰 70여만 명의 대교회로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조용기 목사는 가난하고 병들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목회를 하였다. 그는 오중복음(중생, 성령 충만, 신유, 축복, 재림)과 삼중축복(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삶)을 강조하면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신앙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 조용기 목사는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함께 20세기 세계적인 전도자였다. 세계 사람들은 한 때 한국은 몰라도 조용기 목사는 알 정도였다고 한다. 조용기 목사의 이런 복음 전파는 10대에 폐결핵이라는 당시에는 죽을병에서 고침 받아 목회자가 되었고, 그 후에도 평생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살았지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하는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구제와 복지에도 앞장서 엘림복지회, 굿피플, 심장병어린이돕기운동, 사랑과행복나눔재단 등을 만들어 교회가 사회의 약자들을 돕는데 앞장섰다. 그런가 하면 조용기 목사는 2003년, 2004년 국가보안법폐지 반대와 사학법 저지를 위해서도 서울시청 앞에서 10만 명 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2011년에는 이슬람의 수쿠크 자금 유입 반대에도 분명한 입장을 보여, 권력 앞에서도 기독교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고 조용기 목사는 두 세대 동안 복음 전파와 세계 선교를 통해, 한국교회의 지도자로서 한국교회를 이끌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도 그 분을 존경의 마음으로 “한국교회장”으로 엄수하기로 하였다. 이는 잘한 결정이며 고인을 존중하며, 품격 있게 모셔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고 조용기 목사를 하나님께서 부르심에 즈음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와 모든 성도와 유족들, 그리고 평생 영적 스승으로 모셨던 한국교회의 중진목회자인 제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하기를 간구한다.
    • 오피니언
    • 논평
    2021-09-16
  • 한국교회언론회아프간 사태가 주는 뼈아픈 교훈
    지난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세력에 의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와 국방부 청사에 대한 여객기 테러로 무고한 시민 3천여 명이 사망한 것을 기억한다. 이를 계기로, 이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훈련캠프로 알려진 아프간을 미국, 영국군이 그 해 10월 공습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아프간전에 개입하게 된다. 이 전쟁에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과 북부동맹이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피차간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지난 20년간 1조 달러를 쏟아 부은 전쟁에서 지난 8월 14일(이미 지난 4월에 발표했음) 바이든 대통령이 철수를 천명하면서, 아프간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 동안 연합군을 도왔던 사람들과 여성들이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아프간을 점령한 탈레반은 여성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발표와는 다르게, 여러 사람들이 탈레반에 의하여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속속 알려지고 있다. 이슬람은 ‘샤리아법’(이슬람의 코란, 무함마드의 행적을 기록한 하디스, 이슬람교의 합의된 규율이 포함)이 있는데, 이는 종교는 물론이고, 국가 체제, 개인의 사랑과 결혼, 모든 생활과 상업적 거래에 이르기까지 통제하고 규범 한다. 최근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이후 부르카(여성이 온몸을 천으로 다 가리고, 눈까지 망사(網紗)로 가리는 옷)를 입지 않았다고 여성이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의 싸울 의지의 박약과 부정과 부패로 본다. 과거 1970년대 월남의 패망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미군이라는 강력한 억제력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국가를 지키기 위한 굳센 마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프간 정부군은 미군이 철수하면서 얼마 되지도 않아서, 탈레반에게 나라 전체를 점령당하고 무기를 버려두고 도망가기에 바빴다고 하니, 충격이다. 내 나라를 내가 지키지 않겠다는데, 누가 도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프간 정부의 패망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첫째, 현재 한·미 동맹이 얼마나 견고한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제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군의 힘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 동안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과 사회 발전을 이뤄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에서 원하는 방어를 위한, 한·미 군사 훈련도 제대로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74명이 연합훈련을 반대한다고 나섰다. 대통령도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들은 누구를 위한 지도자들인가? 미국 민주당의 바이든 정부는 ‘싸울 의지가 없는 나라를 위해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였다. 우리는 지금 적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하명법’이나 만들어내는 졸렬(拙劣)과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망의 어두운 그늘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둘째, 모든 것은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경제발전과 거짓된 평화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거기에다 사회 여러 곳에서 사회주의 냄새가 나는 정책들이 난무하고 일부 국민들은 이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이다.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극단적 이슬람으로부터 아프간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피 흘려 왔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그런 꿈은 산산이 부서진 허망한 현실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정신 차리지 못하면, 값비싼 희생을 치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이슬람과 공산주의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그들 종교를 위한 국가이며, 공산주의는 그들 소수의 권력자들을 위한 체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야만, 국민의 행복도 국가의 발전과 미래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의 운명은 이웃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동맹국이 모두를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호국(護國)의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국정(國政)과 사회적 분위기는 뭔가 나사가 많이 풀려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성경에 보면 남유다(이스라엘)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할 때,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평화에 속았고, 거짓 신(물질, 우상숭배)에 미혹을 당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수한 경고에도 깨닫지 못하여 결국 패망의 고통을 뼈저리게 겪어야만 했다. 우리 속담에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여 기독교인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하고, 국민들이 안보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래저래 아프간 소식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저들의 고통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져 온다.
    • 오피니언
    • 논평
    2021-09-02
  • 북한의 심각한 종교탄압, 침묵하면 안 된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2020국제종교자유보고서”(2020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Report)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거의 모든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체포돼서 처형, 고문당하는 가혹한 박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또 북한에서는 종교 활동(주로 기독교)을 이유로 수십만 명(5~20만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데, 종교자유는 보편적 인권으로 어느 국가에서나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인권 문제 해결 없이는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견해이다.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북한으로의 자유 정보 유입을 막는 것이 종교와 신념,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으로 간주하여, 매우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유입되는 외부 정보가 담긴 전단에 대한 항의 표시로 지난 해 6월 평화와 대화와 교류의 상징이었던, 개성에 설치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자기들 마음대로 폭파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또 한국 내에서도 정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종교 활동을 제한했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교회에서의 대면 예배를 방해해 왔으며, 심지어 서울행정법원도 ‘대면 예배를 금지함으로 얻는 공공의 보건 이득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일어나는 해악보다 크다’고 판결한 것도 문제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왜 벌어지고 있는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에서부터 나타난다. 문 대통령은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인 북한을 두둔하여 대북전단 문제를 놓고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언제 남북이 제대로 된 신뢰와 상호 협력의 관계가 형성되기라도 했는가? 북한은 미국 국무부의 종교자유보고서에서 이른 대로, 세계에서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이다. <오픈도어선교회>가 올 해 발표한 세계의 “기독교 박해 지수”를 보면 북한이 단연 기독교 박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은 박해지수 총합계 94점을 얻었는데, 개인생활에서의 박해 지수 16.7, 가정에서의 박해 지수 16.7, 지역에서의 박해 지수 16.7, 국가에서의 박해 지수 16.7, 교회에서의 박해 지수 16.7로 5개 분야에서 최악•최고의 점수를 받고 있다. 그리고 폭력지수에서도 11.1를 받아 모든 분야에서 가장 높은 박해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북한 정부에 대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 서서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 정부의 인권의식은 과연 자유 민주주의 정부가 취할 태도가 맞는가? 이번 주 21일에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은 보편적 인권의 가치가 무엇이며, 지구상에서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인 북한 당국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국가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제대로 배우고 오기를 바란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나라에서 보편적 인권을 박해하거나, 혹은 박해하는 자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악행에 대하여 침묵하는 정부는 국제사회로부터 결코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며, 인권의 시작점이다. 이를 무시한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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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1-05-19
  • 페미니즘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적 세뇌이다
    10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는 충격적인 기자회견이 있었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 당당위, 미래대안행동, 바른인권여성연합, 성인권센터, 케이프로라이프, 한국성평화연대 등의 시민 단체들이 “학생 페미니즘 세뇌 교육한 교사 비밀조직을 즉각 수사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의하면,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편향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비밀 조직이 지난 4년간 활동해 왔는데, 이것이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발각이 되었다고 한다. 그 교사들 조직에서 말하는 내용을 보면 더욱 충격적이다. 페미니즘 교육을 위하여 회원 교사들에게 지침서와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데, ‘교사는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때로는 아이들 간의 정치에도 개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선별학생은 되도록이면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가 있어도 부재하다고 판단하는 아이들을(조부모 양육 또는 보육원) 진로 상담 혹은 학교생활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선별하기 바란다’ ‘작업 포털에서 작업량을 확인 후 반드시 할당량을 채워주기 바란다’는 마치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지령을 통해 내리는 듯한 것들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바른 인격과 인성, 그리고 지식 습득을 통해서 건강하게 성장해야 되는데, 페미니즘에 경도(傾度)된 교사들이 비밀조직을 통한 아주 의도된 세뇌교육으로, 자신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정치적인 희생물로 삼고자하는 암약(暗躍)을, 어찌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페미니즘은 시들해지는 추세이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퇴행하는 페미니즘이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피해망상으로 남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며,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서로가 견원지간(犬猿之間)처럼 싸우고 혐오와 범죄를 저지르는 평행의 집단이 아니라, 서로 차이를 보완하고 사랑해야 하며, 이를 통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는 존귀한 상대이다. 이런 일을 부추기고, 그 활동을 위한 예산을 집행하는 것은 정부이다. 정부 조직에는 ‘여성가족부’가 있는데, 이곳에서 이런 모든 국가 예산과 계획을 짜서 페미니즘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가족부에 ‘여성’과 ‘가족’은 없고,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여성의 차별을 해소한다는 빌미로 남성을 혐오하고, 성(性)을 폄훼하는, 그야말로 ‘가족해체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정부는 연간 막대한 ‘성인지’ 예산을 세워, 국가가 집행하는 예산이 남녀가 동등하게 수혜를 받았는지를 평가한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38개 중앙행정기관의 성인지 예산이 304개 사업에 35조원이 잡힌 것이다. 국민들의 혈세로 정부가 별 짓을 다하고 있다. 이는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페미니즘으로 포장하고 지지하는 세력들을 먹여 살리려는 것은 아닌가? 2021년 우리나라 예산은 558조원인데, 이 중에 6.2%를 ‘성인지’예산에 사용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참고적으로 올해 국방예산은 52조원이다. 국민의 막중한 세금으로 바르게 된 정책과 교육을 위해서도 모자란 판에, 교육부에 속한 공무원인 교사들이 이런 비밀 조직이나 만들어 자기들의 잘못된 교육 목적에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따돌리는 비교육적인 일을 일삼고, 심지어 아이들의 성장 심리와 어려운 가정 형편까지 악용하려는 태도는 매우 악마적인 행위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페미니즘 전파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여성가족부를 즉시 해체할 것이며, 교육부는 아이들을 망치기 위하여 만들어진 교사들의 비밀 조직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통하여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사법당국은 수사를 통하여 비교육을 일삼는 세력을 근절시켜야 한다. 국민들이 어려운 코로나 정국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자신들의 자식들과 후손들을 망쳐 달라고 납세하는 것이 아니며, 엉뚱한데 예산을 집행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과 학부모,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정치권이 하나가 되어, 이런 잘못된 정부의 예산 사용을 막아야 한다. 또 이런 악마적 관행과 악행을 반드시 근절시켜야 한다. 10일 현재 오후 6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런 교사들의 잘못된 비밀 조직을 밝혀내고 처벌해 달라는 것에 27만 명 이상이 동의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옳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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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2
  • 김일성 회고록은 역사 왜곡의 전형이다
    최근 전쟁범인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발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를 출판한 측은 ‘이 기록은 (김일성)이 1920년대 말엽부터 1945년 해방의 그날까지 20여 년간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싸워 온 투쟁기록을 고스란히 녹여 낸 진솔한 내용을 수채화처럼 그려 냈다’고 주장한다. 북한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1920~30년대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10여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전투를 하다 전사한 분 가운데 조선 말 정의부(正義府) 소속의 김일성이 있다. 그리고 함경도 단천 출신의 김창도 의병장도 김일성 장군으로 호칭된다. 그런가 하면 1937년 보천보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동북 항일 연합군 제6사단장도 김일성이다. 또 만주에서 항일 운동하다 동사(凍死)한 김일성도 1922년 일본 육사를 졸업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 장교로 항일연합군 제1로군 제2방면군장도 김일성, 이분은 1940년 33세로 사망하였다. 그런데 소련군 대위였던 김성주가 갑자기 김일성으로 둔갑했다. 과연 그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주도적으로 했다는 것인가? 김일성의 회고록에 담긴 1926년은 김일성이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때이다. 그런데 그가 조선로동당의 뿌리이며 혁명 역사의 출발이라는 반일 청년 투쟁 조직으로 ‘타도 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했다는 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해방 이후 북한이 공산주의로 자리매김을 하면서도 이런 기록은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1968년 이런 주장이 처음 나오게 되는데, 이것을 회고록으로 날조한 것을 우리 국민들이 보라는 것인가? 김일성의 회고록은 한 마디로 북한의 공산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하여 날조, 왜곡, 그리고 개인의 우상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대외 선전용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북한에서 미화한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출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국민을 너무나 우습게 본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2011년 대법원에서는 이 책을 ‘이적 표현물에 해당 된다’며 법적인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의 법률에는 ‘반국가 단체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하고, 고무 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한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혹자들은 김일성의 회고록이 너무나 허황되고 그들의 우상화를 위한 것으로, 오히려 그 책으로 인하여 북한의 실체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 셋, 넷은 모르는 것이다. 이 책의 출판을 허용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법치주의가 무너진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3대 세습과 1인 절대 독재와는 다르게 법률을 통하여 국가의 질서를 세우고 국가를 운영한다. 그래서 법률에 의하여 이런 이적물(利敵物)이 제한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외면하면 법률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고 범법적인 행위들이 줄지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둘째는 이런 이적물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하여도, 특정이념에 경도된 교육감과 일선 학교에서는 이런 이적물을 구입하여 학교 도서관에 비치할 것이다. 도서관에 이런 책이 있어 접하게 될 경우 얼마나 많은 순진한 아이들이 왜곡된 이념 선전물에 오염되어 결과적으로 희생되겠는가? 셋째는 역사관이 훼손될 것이다. 이런 저급 환타지 같은 것들도 인정하자는 것은 이미 1980년대부터 나온 주장으로, 소위 ‘내재적 접근법’을 말한다.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주장이다. 이런 것까지 받아들인다면 역사 해석은 엉망이 될 것이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바르게 해야 되지 않는가? 넷째로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킨 특급 전범이다.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지금까지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그런 김일성의 회고록(내용은 왜곡과 날조)을 우리 땅에서 발행한다는 것은 그의 범죄행위를 용납하고 덮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사법부는 이런 책이 출판된 동기를 파악하여 적법하게 처리해야 하며, 국민들과 학부모들은 이런 이적물로 인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이 왜곡되고 날조된 출판물에 의한 역사적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오피니언
    • 논평
    2021-05-04
  • 방송에 공정성이 빠지면 국민 갈등에 악의 축이 된다
    최근 방송인 가운데 논란거리가 되는 인물이 있다. TBS(서울시 사업소에서 서울시 출연기관으로 전환한, 옛 교통방송)라디오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김 모 씨이다. 그는 국민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TBS 라디오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은 수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 왔는데, 현 정권을 지지하는 방송을 수도 없이 해 왔고, 그로 인하여 편파방송의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김 모 씨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재직 시에 방송을 맡아 지금까지 약 5년간 진행해 오고 있다. 그에 대한 논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객관성, 공정성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현재 지독한 친여 인사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방송을 통해 현 정권의 호위병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방송에 대한 중립성 이해가 부족한 인물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출연료가 지나치게 많다고 알려진다. 얼마 전 야당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씨 출연료가 1회당 200만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23억 원에 해당하는 믿기 어려운 거액의 출연료가 지급 되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게 된다. TBS는 현재 서울시로부터 매년 약 400억 원에 달하는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받는 방송이 편파 방송을 일삼는 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출연료로는, 땀 흘리며 고생하는 젊은이들과 직장인들에게는 꿈과 같은 금액이며, 동시에 절망감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이에 대하여 김 씨와 TBS방송은 정확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아무리 개인의 정보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공익성을 띤 방송에서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분명한 것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이는 무책임한 일이 되며, 국민 무시와 다르지 않다. 또 TBS는 김 씨와 출연료에 대한 계약조차 없다는 것이다. 공공재를 띤 방송이 어찌 개인들의 거래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추정치로 연간 수억 원의 출연료를 지불하면서 수년간 계약서조차 없었다는 것은 괴이쩍은 일이다. 이는 감사(監査)의 대상이 아닌가? 서울시와 감사원은 분명하게 감사를 통해 이런 불공정한 관행을 불식(拂拭)시켜야 한다. 이 사안에 대하여 국민들의 분노는 들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김00 편파 정치방송인 교통방송에서 퇴출시켜 달라”는 요청이 불과 10여일 만에 30만 명이 넘고 있다. 그 내용에 보면, ‘김00은 대놓고 특정 정당만 지지하며, 그 반대 정당이나 정당인은 깎아 내리며 선거나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TBS는 그야말로 교통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려 주기 위한 방송으로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치와 관련하여 편파방송이 된 것은, 서울시민을 한껏 무시하는 처사이며, 스스로 올무를 자기 목에 거는 행위에 다름없다. 서울시는 이 사안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하며, TBS도 서울시민과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이런 잘못된 편파 방송과 불공정한 관행을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방송이 정치에 편승하는 것은 부나비가 여름 밤 화톳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TBS는 개인방송이나 정치 방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논평
    2021-04-27
  • 한교언, LH의 특정종교 특혜 의혹 밝혀야 한다
    지난 3월 초 시민 단체들에 의하여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정 사건이 불거져 나온 지 한 달반 가량이 지나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진상을 철저히 밝힌다고 여러 차례 천명했는데, 지금까지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볼 때에는 그 실효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달 초에는 또 다른 시민단체가 전 LH세종본부장과 전 행복청장(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을 경찰에 고발하는 사건이 터졌다. “세종LH투기진실규명촉구시민단”(단장 김교연)은 보도자료를 통해서, 이 모 전 행복청장을 ‘종교용지 특혜비리로 고발한다’고 하였고, 또 조 모 전LH세종본부장을 ‘특정종교단체에 공고도 없이 5천평 땅 공급한 것을 고발한다’고 하였다. 이 시민단체에 의하면, 이 모 전 행복청장 당시인 2013년 생활권에 들어 있는 종교용지 10,000㎡(약 3,000평)를 불교계에 공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급공고’를 하지 않는 등의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모 사찰이 LH에 양도한 지분의 2,100㎡(약630평)를, 소위 딱지를 가지고 10,000㎡의 용지를 공급 받았는데, 이것이 ‘공급공고예외’ 대상이 아님에도 이를 적용했다는 것이다. 또 이 모 전 행복청장은 특정종교에 토지를 확대공급하기 위하여 도시개발계획까지 변경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불교계는 그 이후에 2,000평을 더 받아 5,000평의 땅을 공급받았음) 또 조 모 전LH세종본부장은 불교계에 생활권으로 들어가는 종교용지 16,000㎡(약 5,000평)을 공급하면서도 공급공고를 하지 않고, 밀실행정으로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과 함께, 시민 단체들과 현지인들에 분노를 사고 있다. 당시 주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 지역에 청와대와 국회가 내려올 자리라고 하여 LH가 헐값으로 땅을 매입하고, 행복청이 땅의 일부를 특정 종교계에 공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의혹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2017년 지역 언론들은 행정수도가 될 세종시에 한국불교문화체험관 건립을 앞두고 행복청, 세종시, 문체부 등이 세종시민 간에 갈등을 유발시켰다고 보도한다. 또 불교계 언론의 보도에도 보면, 2014년 당시에 이 모 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과 조 모 전 LH세종본부장이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방문하여, 부지 계약체결 문제와 ‘세종시에도 국민들의 정신을 모을 수 있는 종교시설이 들어오길 기대한다’는 대화가 오간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와 지역민들의 주장대로, 국가기관이 종교 부지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편법이나 불법이 있었다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한다. LH 입장에서도 정확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아무리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한 행위라 할지라도 공정과 적법한 절차가 아니었다면, 이는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정부는 공직자들의 이런 행위가 시민들이 주장하는 바, 불법이라는 의혹을 명확히 밝혀,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한 LH 관련 문제를 정의롭게 판단하고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 오피니언
    • 논평
    2021-04-27
  • <2021년에 바란다>희망과 감사의 노랫소리가 높아지게 되기를
    2020년은 너무나 참혹했다. 코비드19로 사람들의 일상이 깨지고, 마음까지 무너졌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교회에서의 예배가 흐트러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생명처럼 여기던 예배가 타의에 의하여 중단되고,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으로 여겨왔던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마치 범죄 행위로 취급받는 참담함을 경험하였다. 복음의 가치가 손상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들이 핍박으로 인하여 상당한 위기감을 맛보았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2류 국민으로 취급받는 상황까지 되었고, 교회는 마치 질병의 온상처럼 공격을 당하였다. 또 일부 교계 지도자들은 거꾸로 교회를 비난하는 상황으로 혼란을 가중시켰다. 참으로 길고 험한 한 해였다. 그러나 교회는 엄연히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존재하고 있음을 믿는다. 우리 교회가 당한 고난과 아픔은 장차 다가올 심판시대를 준비하는 것으로, 순결한 믿음과 순교의 각오가 있어야 신앙과 교회를 지킬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된 것도 틀림없다. 이제 2021년에는 코비드19가 정복되어 사람들의 무너진 삶터가 회복되고, 나라는 나라답게 되고, 서로 간에 자유로운 교류와 만남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바란다. 단절이 소통이 되고, 일방통행이 쌍방 간 왕래로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 바란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드리며, 성도들은 종말의 신앙으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바란다. 그 동안 웅크렸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떨쳐 일어나, 희망과 감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되기 바란다. 미움과 분열과 다툼이 있는 곳에서 화평의 노래를 부르고, 불신과 편 가르기가 있는 곳에서 화합의 노래를 부르고, 절망과 어두움이 있는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되기 바란다. 또한 고난과 역경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승리의 노래를 더욱 크게 부르게 되기 바란다.
    • 오피니언
    • 논평
    2020-12-25
  • 2020년 사자성어, 我是他非(아시타비)
    2020년 전국의 900여명의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말하는 것이다. 교수들의 32.45%가 지지하여 얻은 2020년의 사자성어는 그야말로 우리 정치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21.8%를 얻은 2위도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 ‘낯이 두껍고 뻔뻔하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말한다. 3위도 격화소양(隔靴搔癢)으로 ‘성에 차지 않고 철저하지 못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2017년 이 정권의 출범을 보면서 교수들은 국민들과 함께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2017년 사자성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사악한 것은 부수고, 바른 사고방식이 나타나기를 바란 것’이다. 그리고 2018년에도 현 정권을 응원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택했다. 이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국민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교수들은 우리가 공동운명체임을 나타내는 뜻으로, 2019년의 사자성어를 공명지조(共命之鳥)로 택했다. 이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가 있으나 목숨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2020년 한 해를 돌아보면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지고, 그 같은 편끼리는 온갖 잡음과 문제라도 봐 주고, 상대편은 가차 없이 물어뜯고 할퀴는 모습 앞에 我是他非(아시타비)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국민들은 나라를 걱정하는데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도 방법도 절차도 양심도 예의도 무시하고, 때로는 민주주의를 위한다고 하면서 그 동안 쌓아왔던 민주주의조차도 허무는 행태들이 무수히 나타났다. 100세의 노학자는 현재의 정치권을 보면서 ‘정치인과 공직자는 애국적 양심을 잃지 말라’고 일침(一針)한다. 그러면서 민생보다 정권연장에 집착하는 정부가 사회 곳곳서 전례 없는 간섭을 자행하며, 반민주적 상황은 민주 정치를 포기한 듯하며, 정의와 자유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우리는 지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엄청난 위축과 절망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말라가는 샘물에서 물을 서로 나눠 먹고 서로 돕고 사는 천학지어(泉涸之魚)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현 정권은 소위 말하는 군주민수(君舟民水-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인데, 임금은 백성이 세우지만, 임금이 잘못하면 백성들이 임금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뜻)를 통하여 들어선 정권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아시타비(我是他非)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다고 보는가? 이제라도 정권과 정치권은 관인엄기(寬人嚴己-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함)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권 연장에만 욕심을 부리지 말고,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위한 일에 최대 목표와 관점을 두며, 진정한 국가를 위한 봉사자의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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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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