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째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출퇴근 중이다. 간신히 다시 연 학교엔 일주일에 한 번만 간다. 그나마 수업 시간이 줄고, 급식 전 집에 가는 아이가 태반이다. 날마다 엄마 따라 네다섯 군데 방송국을 도는 아들은 입이 댓 발 나와 있다. “대체 이게 뭐야!” 미처 답하지 못했다. “나도 살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
반 년째 열 살 어린이의 발을 묶어둔 그건, 바로 처음 만난 바이러스 ‘코로나19’다. 교육열로는 어느 나라에도 안 밀릴 한국에서 학사 일정까지 바꾸게 할 만큼 강력한 변수다. 원인과 전파경로가 뚜렷하지 않고, 백신도 기약이 없으니 일명 ‘3밀(밀폐,밀접, 밀집)’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 한다.
경제는 사람이 만나고 모일 때 움직인다. 사람 사이의 빈번한 교류가 소비를 낳고, 소비가 개발을, 개발이 제조를, 제조가 운수를, 그리고 이 과정에 생기는 부가가치가 다시 서비스업을 키운다. 소비에서 서비스까지 일련의 과정에 우리는 모두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기여한다. 그러니 ‘3밀 포비아의 시대’와 경제 부흥은 평행선의 양 끝이다. 간신히 버텨온 자영업, 안 그래도 부족한 일자리, 가뜩이나 부실했던 경계 기업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 천수답 농사짓듯 백신만 기다리는 게 답일까. 단언컨대 ‘언택트 시대(비대면)’에 기다리는 자에겐 기회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오프라인의 ‘3밀’은 2020년 우리 경제의 적이지만, 온라인 ‘3밀’은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온라인 교육·화상 서비스 회사 ‘줌(ZOOM)'의 성장이다.
지난 2011년 중국계 미국인 에릭 위안이 설립한 세계 최대 화상회의 솔루션 업체 ‘줌’은 코로나19 이후 산업 구조와 삶의 변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이용자가 1000만 명 수준이었지만,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올해 3월에는 2억 명, 4월에는 3억 명이 ‘줌’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일하고 배우고 만났다.(출처 : statista)
덕분에 올해 1분기 ‘줌’의 매출은 1년 전 같은 달보다 169%나 늘어난 3억2830만 달러(한화 약 3989억 원)를 기록했다.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주식의 가격은 올해 초보다 202% 오른 207.6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시가총액은 500억 달러(한화 60조7450억 원)를 돌파해 유명 가상화폐업체 이더리움을 뛰어 넘었다(6월 11일 현재). 미중 갈등에서 시작된 이른바 ‘줌 금지령’ 속에서도 당분간 이런 흐름은 더 견고해질 전망이다.
석유 화학이 울상을 짓고, 해운과 항공이 무너지고, 자동차 회사가 간판 내리길 고민하는 이때에 그저 온라인에서 업무와 교육이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솔루션이 이룬 성과는 놀랍다. 중요한 건 이런 변화가 더욱 빠르고 강하게 우리 삶을 바꿔놓으리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IT 기술과 제조 능력을 함께 보유한 한국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 기존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정도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나 기업)가 될 적기다.
언택트 시대의 기본은 탄탄한 통신망과 고성능 모바일 기기다. 그간 통신망을 잇는 네트워크 장비 부문에선 중국과 북유럽 업체들에게 밀렸던 게 사실이다. 2018년 기준으로 화웨이가 전체 시장의 29.8%를, 에릭슨과 노키아가 각각 24.9%, 20.4%를 차지한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한국이 상용화 시대를 연 5G 장비 분야에선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지난해 3분기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3%로, 1위 화웨이(30%)와 한 자릿 수 이내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잘 지켜왔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삼성은 약 20%, 화웨이가 16%를 차지했다. 애플은 10%에 그치지만 고가의 하이엔드 시장 비중이 높아 부가가치가 크다. 글로벌 상위 5개 업체 중 3곳이 중국 업체라는 건 두렵게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IT 중심의 한국판 뉴딜’은 시의적절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산업으로 피부에 와닿는 경제 충격을 설명하는 데엔 한동안 어려움이 있겠지만, 인프라 산업이되 시멘트와 토목이 아니며, 제조이되 자동차 석유가 아닌 뉴 노멀을 강조하는 건 피해갈 수 없는 흐름이다. 통신과 그에 기반을 둔 장비. 그리고 여기서 유발될 다양한 일거리와 서비스. 정부가 강조하는 ‘한국형 뉴딜’은 사실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 설명은 이 부분에 보다 방점을 둬야 한다.
코로나19 소나기를 피해가는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결국 정부의 기능은 일자리를 주는 게 아니라, 일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형 뉴딜’을 통한 향후 고용정책의 중심은 반드시 5G 관련 산업 선점에 둬야 한다. 피상적인 인력 확대 등의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전공대 설립의 사례처럼 관련 산업의 기틀이 될 사람을 키우고 공공 부문의 수요 창출이 어느 방향으로 이뤄질 것인지 확실한 시장을 열어주는 게 급선무다.
가을이 지나면 잎이 진다. 가는 계절을 되돌릴 순 없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지는 일자리’에 대한 애도보다 ‘생길 일자리’를 찾아내는 일이 급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46만 명이 사망한 지금도, 인류 최대의 고민은 감염(64%)보다 먹고 살 걱정(77% : 칸타, 2020, 아시아 6개국 ‘디지털 버즈 분석 조사’)이 더 크다는 게 민심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