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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아의 생명은 보호해야 한다
    최근 소위 ‘낙태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여성계 원로 100인이라는 사람들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한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가뜩이나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온 국민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의 존엄성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태라고 본다. 이런 무책임한 처사의 발단은 지난 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같은 헌재가 2012년에는 낙태죄의 합헌을 선고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헌재가 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2020년 말까지 국회에서는 낙태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낙태’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어 우리나라는 생명을 경시하고 낙태를 통해 수많은 생명을 합법적으로, 엄마의 손에 의해서 죽이는 범죄 국가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법조인들 몇 사람의 결정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명들이 스러져간다는 것이다. 정부쪽에서는 14주 이내에는 자유로운 낙태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란 소식이 들리는데, 낙태가 임신 후 12주 이내에 95% 이상이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14주 이내를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한국은 OECD 주요 국가들 가운데 1,000명당 낙태 건수가 20명으로 최고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 다음으로 높은 프랑스의 15명보다도 훨씬 높으며, 7.2명을 기록하고 있는 독일에 비해서는 3배가량 높다. 그런데 전면적인 낙태를 허용한다면, 태아 살해의 증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성산윤리연구소가 지난해 모든 낙태가 허용될 경우 우려되는 점을 여론 조사했는데, 33.8%가 무분별한 낙태 증가, 17.0%가 청소년 임신 증가, 15.2%가 낙태강요 증가, 13.4%가 원치 않는 임신 증가가 될 것이라고 답하였다. 낙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태아의 생명 존중보다는 여성의 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말한다. 그렇다면 낙태를 마음대로 한 여성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러나 전문가들은 ‘태아는 죽고, 여성은 다친다’고 한다. 그러므로 최후, 최고의 피해자는 오히려 여성이 된다. 법은 우리 사회의 하부체계인데, 법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심지어 생명에 대한 결정권마저 갖는다면, 이는 하위 개념인 법이 상부 개념인 양심과 자유,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능가하여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법이 왜 필요한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또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법이 오히려 사회적인 계약과 규범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면, 굳이 이런 법체계가 왜 필요한가? 살인을 방조하고 오히려 그런 행위를 보호하는 법은 필연코 병든 사회를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죄’에 대한 개정을 해야 한다면,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고, 여성의 건강을 위한 것에 제한해야 하고, 낙태를 상업적 목적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낙태 수술을 거부하는 양심적이고 종교적인 의료인을 처벌하지 않는 등의 보호가 있어야 한다. 생명의 시작은 인위적으로 기간을 정해서도 안 될 것이며, 수정(受精)과 함께 이미 생명으로 인정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들도 수정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생명으로 이 땅에 태어났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도 태아로부터 시작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선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악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태아를 무자비하게 무분별하게 죽이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선한 행위와는 무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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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10-16
  • 교회를 융단폭격하는 권언밀착(權言密着) 언론들
    지난 1월 중국 우한으로부터 전파된 코로나19바이러스(코비드19)는 9월 2일 현재, 우리 국민 1,980,295명(전체 국민의 3.82%)을 대상으로 검사하여, 확진자 및 누적 20,449명(확진율 1.03%)을 기록하고 있다. 또 안타깝게도 그 가운데 326명(치명률 1.59%)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미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팬데믹(전염병 유행) 상태이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이를 공식화하였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확진자는 여러 곳에서 골고루 발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권언밀착(權言密着)의 한국 언론들이 한국교회를 코로나 전파의 주범으로 만들고, 그 프레임을 씌워 나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고약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각 언론들의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보도에서 한국교회에 대하여 보도한 것을 한국교회언론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각 주요 언론들(일간지 8개-경향, 동아, 문화, 서울,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일보. 통신사 1개-연합뉴스. 공중파 방송 3개-KBS, MBC, SBS. 종합편성방송 3개-YTN, 채널A, JTBC. 인터넷 및 언론 매체 5개-뉴시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노컷뉴스, 미디어오늘)이 지금까지 한국교회에 대하여 보도한 것이 2만 3천건 이상이다.(조사 대상 외 언론까지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많아짐) 지난 2월부터 9월 2일 현재까지 각 교회에 대하여 언론이 보도한 것이 23,230건이며 해당 교회 수는 72개이다. 그 중에 사랑제일교회는 8월 12일부터 보도했는데도 약 1만 건에 달하고 있다. 또 각 언론들이 나머지 71개 교회에 대해서도 교회별로 적게는 5회에서 많게는 928회까지 집중적으로 보도하여 13,237회를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놓고 볼 때, 각 언론들은 교회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경쟁하듯 보도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융단폭격’(絨緞爆擊)식으로 하여 한국교회를 초토화시키겠다는 불손한 의도마저 느껴진다. 이런 보도 행태는 교회를 한껏 부정적인 집단으로 보이도록 하려는 것으로, 분명히 잘못된 황색 저널리즘에 다름 아니다. 그런 한국 언론들의 신뢰도는 얼마나 될까?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2020년 뉴스 신뢰도 조사”를 보면, 한국의 언론들이 쏟아내는 뉴스 전반의 신뢰도가 조사 대상국 40개국 중 꼴찌를 차지하고 있는데, 신뢰도는 21%이다. 조사 대상 40개국 평균의 38%에도 한참 못 비치는 수준이다. 한국교회 일부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온 것도 사실이지만, 전국 6만 3천개 교회 가운데 72개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은 0.11%로 매우 낮은 비율이다. 그러나 팬데믹 상태에서 교회 밖에서 감염되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교회가 100%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언론들은 교인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 확진자를)‘교회발’로 기사를 쓰면서, 마치 교회가 질병의 근원지나 확산의 주범이라도 되는 듯 국민들에게 착각을 일으켜, 교회에 대한 비난을 가중토록 하는 의도된 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와 언론이 「코로나 포비아」를 만들어 놓은 가운데 이런 과도한 보도를 함으로 국민들에게는 분명히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도록 하였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그 목표라는 것을 합리적 의심 외에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최근 예장합동교단에서 여론 조사한 것을 보면, 코로나19바이러스 문제로 가장 타격을 받을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기독교가 될 것’이라는 응답이 82.1%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수많은 교회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교회도 국가 방역의 허점과 팩데믹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이다. 교회가 코로나에 대하여 어떤 방역에 임하는가를 알면, 이처럼 폭력에 가까운 홍수(洪水)식 보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가 방역을 위한 일에 최고의 파트너였음에도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과 부담, 그리고 비난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악의적인 보도 때문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정부가 교회를 비협조적이고 막무가네 집단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결국은 충분히 이뤄졌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국민 계층 간 ‘편 가르기’를 종교 간에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주요 종단(宗團) 가운데 유일하게 기독교의 전통 예배만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에 위배되는 ‘행정명령’을 내려놓고 이에 복종하지 않는 교회들에 대하여는 대대적으로 ‘징벌에 처한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릇된 언론 보도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한 우리 사회 전반적인 고통과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기독교만 통제하려 한다는 불만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권언밀착 관계에 있는 언론들의 왜곡·편향·과장되고 ‘교회 허물기’로 의도된 보도행태는 그치지 않고 있다. 이는 언론의 최소 의무인 균형·공정보도 마저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언론계의 신뢰도만 계속 하락시키게 될 것이며, 교회는 국민들로부터 부정적인 표적이 되어, 한국교회의 줄기와 뿌리와 같은 신앙에 심각한 피해가 가중될 것이다. 이는 한국교회 미래에도 큰 피해를 입히는 부작용이 될 것으로 매우 우려된다. 언론이 막대한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 이런 불공정을 지속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온 국민이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바이러스의 소멸과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국가 방역에 힘써 협조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이다. 따라서 언론들은 무차별적이고 ‘융단폭격’식의 교회관련 보도를 지양(止揚)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형성에 열심히 충성하여 효과를 거두지 않았는가? 세상일들이 펜듈럼 무브먼트(pendulum-movement)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언론들이 정권에 따라 변신의 귀재인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한국 언론들이 국제 뉴스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라니 부끄럽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제는 그런 오명(汚名)을 벗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제 정부도 「코로나 포비아」를 조성하여 교회를 공격하고 위법적으로 예배와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4.15총선 부정의혹이나 정부의 여러 실책들에 관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 모두가 알게 되어 있는 꼼수를 멈추고, 진정으로 국민 모두의 건강을 위한 방역에 전력하여, 고약한 코로나 정국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한국교회를 ‘희생양’으로 삼아 코로나 정국을 이어갈 것이며, ‘마녀사냥식’으로 실정(失政)을 덮을 수 있다고 보는가? 차제에 정권은 유한하나 종교는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성경에 보면,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하셨다(누가복음12:2)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의 진위(眞僞)를 아시고, 그에 따른 정의로운 판결을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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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9-07
  •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분, ‘영웅의 아들’인가?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 불편함과 두려움, 그리고 삶의 터전이 허물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를 함께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엄정하고 위험한 사태는 아마도 전쟁 외에는 경험한 적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바이러스 방역이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국민 어느 누구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방역 당국의 수고에 비협조적일 수 없다. 그것은 방역의 일이 곧, 국민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역시 이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기독교계가 정부 방역을 방해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거짓된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단체들이나 혹은 개인들, 누가 감히 방역을 방해하는가? 자신이 죽으려고 작정하여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만약에 개별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이는 그 교회의 존망이 달려 있는 것으로, 각각의 교회들은 노심초사하고 방역에 철저를 기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있던 국민들의 함성을, 소위 ‘8.15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 전파의 새로운 진원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집회를 주도했다고 알려진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를, 용서 받지 못할 일을 벌였는지에 대하여는 논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부 측과 교회 측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려하며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코로나 전파의 진원지로 지목받아 박해받는 이 현실에 대한 진실성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 방역 모범국가로 타의와 자의에 의하여 인정받았다며, 정부는 이에 고무되어 7월말부터 국민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 일환으로 ‘정부할인쿠폰’ 1,700억 원어치 284만장을 배포하고,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여 3~4일간의 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또한 코로나19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의 입국을 지난 8월 10일 허용하였다. 이러한 여러 정황들이 광화문 집회인 8월 15일 이전에 이미 코로나 확장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사랑제일교회와 그와 관련된 몇 교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전국 6만 3천여 교회 가운데 대부분의 교회(서울, 경기, 인천, 부산, 대전, 충남, 전남 일부)들에게 일방적으로 정상예배금지를 명령한 것은 매우 유감 된 조치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매우 잘못되었다. 일예로, 경기 파주에 소재한 스타벅스 커피점에게 수십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에, 전국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점 모두를 폐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교회는 개별교회로 존재하는 것인데, 동일한 원칙을 적용했어야 하는 것인가? 이는 헌법 제37조 2항에서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예외 조항에 위배된다. 즉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헌법이 요구하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제한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인데, 목적의 정당성 외에 나머지 3가지는 위반한 것이다. 일예로, 한 소년이 막대기를 들고 말썽을 부린다고 해서 국가기관이 기관총으로 응대한다면 방법의 적절성 문제로, 과잉대응이다. 그런데도 정상적인 예배형태를 소위 ‘비대면예배’로 하라는 것은 예배형태의 임의 변경 강요이기 때문에, 헌법 제20조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까지 위반한 것이다. 연전(年前)부터, 정부의 여러 실정(失政)을 비판하는 국민들과 기독교계 교회로 인하여 정부·여당이 불편해 하는 것은 국민들 대부분도 알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기독교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일부 교회의 일을 기화(奇貨)로 하여 전체 기독교계를 묶어서 박해를 가하려는 시도, 코로나를 빌미로 기독교를 희생양 삼으려는 정부의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한 대통령이 현재의 그 분이 맞는가? 의아심이 든다. 최근 대통령의 표현은 우리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한다. 국민들이 듣기에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을 자주 한다. 독재자로 낙인찍고 있는 박정희 정권에서도 교회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교회를 압수수색하고, 주일에 목회자 체포를 시도하는 일, 또 허가받은 집회에 경찰을 보내어 위협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혹시 성경에 있는 ‘영웅의 아들’이 되려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를 박해하는 것을 일부 국민들이 좋아하니 전체 교회를 박해하려는 것은 아닌가? 성경에 보면 헤롯은 초대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박해한다. (헤롯이)야고보를 처형하자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그래서 다음으로 베드로 사도를 처형하려고 감옥에 수감했으나,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베드로 일행을 감옥에서 석방시켜주셨다. 헤롯은 ‘영웅의 아들’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행을 갚아주셨다. 대통령은 천주교인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같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이 아닌가? 그런데도 교회를 함부로 대하시려는가? 현재 천주교, 불교는 정상적으로 예불과 미사를 하도록 허락한 상태이다. 이는 천주교, 불교는 존중하고, 기독교만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기독교 신앙의 생명과도 같은 정상예배는 박해하지 말아 주시기를 바란다. 얼마 전, 전국의 17개광역시·도기독교연합과 전국 226개시·군·구기독교연합, 그리고 한국교회언론회가 어렵게 결심하고,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苦言)의 성명을 했다. 이를 대통령께서는 많은 국민, 특히 주류 기독교의 음성으로 들으시고 국정에서 교회를 적(敵)으로 돌리지 마시고, 선한 파트너로 여겨 주셔서 인간의 영웅이 아닌,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대통령이 되시기를 다시 한번 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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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8-28
  • 초등학생들에게 외설적 성관계, 동성애 조장 도서를 보급하는 여성가족부, 가족해체부인가?
    우리나라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 없는 행정조직이 하나 있다.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여성부’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가 되었다. 이 여성가족부(장관 이정옥. 이하 여가부)가 하는 일을 살펴보면, 여성정책의 기획의 종합 및 여성의 권익 증진, 청소년의 육성과 복지 및 보호, 가족과 다문화 가족정책의 수립과 조정과 지원, 그리고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 피해 예방 및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국가에서 제반 행정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여가부가 지난해부터 전국의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나다움 어린이책’을 배포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충격적이다. 그러한 책들 가운데는 동성애를 정상으로 가르치고, 남녀의 성관계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외설적이며, 초등학생들에게 조기 성애화(性愛化)를 한다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나쁜교육에 분노한 학부모연합”이라는 시민 단체에서 여가부가 배포한 책들의 분석한 것을 보면, ‘우리가족 인권 선언’(도서출판 노란돼지)에서 ‘엄마 인권 선언’ 가운데, 두 여성 커플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이 있는데 이것은 ‘동성혼’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혼한 후에 아이를 돌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데, 이는 이혼을 여성의 권리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같은 책의 ‘아빠 인권 선언’도 비슷한 내용이며, ‘딸∙아들 인권 선언’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하며, 자연스럽게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도서풀판 시금치)에서도 동성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와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에서는 남녀의 성관계 장면을 지나치게 노골화시켜, 초등학생들을 조기 성애화 시킨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종(異種) 간 결합을 통하여, 다양한 성적 취향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든지(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도서출판 키즈엠) 여성의 자위와 성관계, 피임법에 대하여 설명하며 콘돔을 권장하는 내용(걸스 토크-사춘기라면 정작 말해주지 않는 것들-시공사)들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여성가족부가 일선 초등학교에 배포하는 책들이 과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성교육서’인지, 아니면 지나친 성의 문제를 노골화하여 아이들에게 조기 성애화(premature sexualization)를 만들어서 ‘교육적폐’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는 영문으로 ‘Ministry Gender Equality and Family’로 쓴다. ‘여성’과 ‘가족’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성 ‘Gender’를 사용함으로 여가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여가부가 하려는 것이, 어린 아이들을 바른 성교육과 인격체로 성장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선과 악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고, 교육의 기준을 하향평준화하여 인성을 타락시키면서, 오염된 세태에 맞추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따라서 여가부가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 그리고 여성과 가족의 바른 가치와 건전한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정의 해체, 도덕과 윤리의 타락, 아이들을 왜곡된 ‘성소수자’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라도 여가부는 이런 잘못된 정책을 철회하며, 배포된 문제의 책들을 모두 수거하여 폐기하여야 한다. 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아이들과 국가의 장래를 망칠 일에 앞장서고 있는가? 이런 일에 국민들은 얼마나 인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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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8-17
  •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석방을 위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미국의 청원 전문 사이트인 ‘체인지 닷 오그’(change.org)에는 지난 2013년 이후에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 6명의 석방을 위한 행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 ‘세이브 식스 코리언’(save 6 korean)은 청원이 완료되면, 한국 정부, 한국 대통령, 한국 국회,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사항을 전달할 것으로 밝히고 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 6명은 누구인가? 김정욱 선교사는 2007년부터 탈북자들을 위한 대피소를 중국 단둥에서 운영해 왔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 북한에 의하여 체포되어 2014년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형을 선고 받고, 현재까지 구금된 상태이다. 그리고 김국기 선교사는 2003년부터 탈북자들을 위해 중국 단둥에서 피난처를 운영하다가, 2014년 10월에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2015년 6월 고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최춘길 선교사는 2014년 10월에 체포되어 다음해 6월에 역시 고된 노동형에 처해졌다. 북한이 이들 선교사를 체포·구금하고 억류하는 이유는 그들이 반국가 활동, 국가 전복, 간첩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탈북민들을 도운 것뿐이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은 이미 ‘난민’과 같으므로,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장 7년 이상을 강제노역과 심각한 인권 침해를 하는 것은 반인도적이며 비이성적이며, 정상적인 국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자 출신의 김원호, 고현철, 함진우 씨가 북한 주민을 위하여 일하는 선교사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역시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현재까지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다. 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2018년에 남북의 정상이 3번이나 만나는 일이 있었지만, 회담에서 자국민의 석방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과 우리 정부는 거창한 ‘평화’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억울하고도 강제로 억류되어 있는 무고한 우리 국민들부터 석방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주장하는 것들이 진정성이 있음을 증명하기 바란다. 우리 정부는 적어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 6명의 생사의 문제, 건강의 문제만이라도 급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이들의 석방과 귀환을 위해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나서야 하는데 국제 사회가 먼저 나선 것도 창피한 일이지만, 억류자들에 대한 정확한 실제 상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수치스런 일이다. 이번에 통일부장관은 북한에 1,0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했는데, 무턱대고 지원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석방하는 조건이라도 달아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3명을 귀환시켰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는 자국민의 보호와, 강제로 억류된 우리 국민의 석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책무가 아닌가? 국민 없는 국가가 없으며,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정부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 오피니언
    • 논평
    2020-08-07
  • 정권과 권력의 위기는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지만, 정권은 국민에 의해서 탄생되며, 국민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권력과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허락하신다. 현 정권,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탄핵으로 몰아 붙여 촛불로 탄생된 정권이다. 전 정권을 탄핵한 근거가 합당하다면, 현 정권은 그 합당한 근거에 의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로 보답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현 정권이 표명했던 정책과 주장들에 대하여는 성과를 보였어야 했다. 전 정권에서 무너졌었다는 공정·공평·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했는데, 최소한의 성과가 아니라 정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현 정권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에 현 정권과 여권에서 만들어내는 일들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자신들에게 기회를 준 국민들을 의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더 나아가서 왜 이 정권을 선택했는지를 후회한다는 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한 예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사태에 대하여정부와 여당이 취하고 있는 태도이다.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도 묻어 두려고 하고, 알려진 바대로 성추행이 원인이라면 비서 여성에게 진실된 사과와 함께 피해보상과 위로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는 그간 고 박원순 전 시장과 현 정부의 주장과 인권정책에도 부합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목소리를 높여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한 이들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알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알려진 대로 인권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이고, 페미니스트를 적극 지지하고,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이기도 하였다. 그런 박 전 시장이 수년간 여비서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피의자의 주장이라고 하는데, 외부 인사를 통하여 사실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직도 믿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는 것은 사건 내용이 너무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8년 안희정 충남지사에 의한 ‘미투 사건’과 올해 오거돈 부산시장에 의한 ‘미투 사건’이 있어 사회적으로 시끄러울 때에도 그러한 행동을 멈추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진보논객 진중권 씨는 이런 더불어민주당을 ‘더듬어만지당’이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 박 전 시장이 불미스럽게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님의 뜻을 기억 하겠다’는 현수막이 서울 곳곳에 나부꼈다. 도대체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에는 여성 의원들도 많다. 그 중에는 페미니즘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도 여럿이 있다.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할 사람들이 그들이 아니었나? 더욱 가관인 것은 소위 친문(親文) 세력이라는 인사들이 피해자에게 2,3차 가해를 한 것이다. 참으로 못 믿을 행위를 국민들은 똑똑히 보고 있다. 여권에서는 아직도 피해 여성을 ‘성 추행 피해자’라고 하지 않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한다. 거대한 권력을 가진 여당이 그동안 선전해온 대로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그 입장에 서지 않고, ‘여론 재판’이나 ‘상징 조작’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충격적인 것은 6·25전쟁의 영웅이며, 국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한 국가·정부적 예우이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고 백선엽 장군은 우리나라를 공산화의 위기, 백척간두에서 구한 분명한 영웅이다. 그런데 유해(遺骸)를 서울 국립현충원에 정중히 모셔야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대전 현충원에 모시는 것도 ‘친일’을 볼모로 옥신각신하였다. 참으로 민망하고 볼썽사나운 추태이다. 오히려 미국 쪽에서 더 영웅으로 대접하고 그의 공로를 추켜세웠다. 지난 15일 장례식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청와대는 공식적인 추모 메시지나 논평조차 없었다. 전쟁 영웅에게 이렇듯 홀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부정이며, 부끄러운 국가와 정부의 민낯을 국제사회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망신이다. 고 백선엽 장군의 안장식 후에도 국가의 영웅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국가가 보여주었다. 국가보훈처는 15일 안장식 후 다음 날인 16일, 고 백선엽 장군의 정보란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넣었다. 왜 백선엽 장군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란 말인가? 이들의 주장은 과거 고 백선엽 장군이 만주의 간도특설대에 장교로 있으면서, 일본군 입장에서 독립군을 소탕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몰 역사요, 역사왜곡이다. 고 백 장군이 근무할 1943년 당시에는 만주에 독립군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21년 6월, 소련 공산군대가 3,900여 한인 무장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 이른바 자유시 참변(自由市慘變)이후 독립군은 만주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1937년에서 1945년 일제의 패망 때까지 일본군 최정예 부대 100만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만주에 무슨 독립군이 활동했다는 말인가?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은데, 어찌 있지도 않은 독립군을 소탕했다면서 역사까지 왜곡하는 재주를 부리고 있는가? 현 정권의 실정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최근에 젊은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서민들에게 혼란을 주는 부동산 문제, 박원순 등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미투 사건 등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언어 유희적 장난만 보인다. 여권의 ‘국민 막보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 박원순 시장을 조문하고 나오는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성추문 사건에 당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기자에게 욕을 했다고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언론 기자에게 대답은 못할망정 욕을 했다는 것은 오만과 방자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때문이다. 현 정권과 여당의 실정은 한 마디로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자기편만을 감싸 주는 ‘내로남불’의 의식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 시민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을 향하여 신발을 집어던졌을까? 지금 국민들의 마음에는 너도 나도 신발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진보계의 원로 학자이며, 서울대 명예교수인 최장집 교수는 ‘촛불 시위 이후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는 전환점으로 기대됐지만,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그 이유는 ‘문 정부가 집권하면서 당·정·청에 유입된 운동권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와 여권 극렬 지지층인 이른바 ‘문빠’세력이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다’고 하였다. 현 정권에서 핵심에 있거나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에 대하여, 그들의 출신학교에서는 ‘부끄러운 동문’이나 ‘가장 부끄러운 교우’를 매겨서, 그들이 부끄럽게도 1,2,3등을 달리고 있음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국민들이 지지하여 탄생한 정권이 잘 되는 것은 국민의 행복이 된다. 그러나 반대 현상으로 간다면 국민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정권의 마침도 불행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이라도 정부와 여당은 국민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권력으로 새로워져서 진정으로 국가 발전을 위한 목민·애국정치를 펼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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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7-20
  • 고 백선엽 장군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다
    고 백선엽 장군이 10일 100세로 별세하였다. 그의 죽음을 두고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국군 장병을 대표해 한평생 대한민국과 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백 장군에게 높은 경의를 표하고 가슴 깊이 추모한다. 군은 백 장군의 숭고한 헌신과 투철한 군인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하였다. 정확한 표현이다. 2010년 육군 1사단은 백 장군의 전승과 공적을 기념하는 비석을 제막하였다. 군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육군도 최근 보도자료에서 ‘고 백 장군은 1950년 제1사단장으로 취임해 낙동강지구 전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한국군 최초로 합동작전을 통해 대승을 거둬 반격 작전의 발판을 제공했다. 같은 해 10월 국군 1사단이 먼저 평양을 탈환해 민족의 자존심과 국민의 사기를 드높였다’고 하였다. 2013년 주한 미군은 백 장군을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공화국(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는데 탁월한 업적을 세운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2017년 백 장군의 생일 파티에서는 미국의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대사가 무릎을 꿇고 백 장군을 맞이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백 장군은 조국이 공산군의 불법 침략 앞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조국을 지키고 구한 일대 영웅이다. 그런데 고 백 장군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친일파로 국립현충원에 모셔서는 안 된다’는 말로 고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리배들이 있었다. 그런데 별세 하신 후에도 그런 말들이 나온다. 한 마디로 백 장군과 같은 분들이 목숨 걸고 희생하고 충성한 바탕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지금은 자신들이 등 따뜻하고 배가 부르니 트림하는 가벼움으로 들린다. 물론 이 분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나와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항일 독립군이나 조선인을 괴롭혔다는 것은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다. 고 백 장군이 만주국 간도특설대로 근무할 당시인 1943년에는, 이미 1920~1930년대 일본군에 의한 독립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1921년 소련 영토인 자유시(스보보드니)에서 독립군의 분열과 함께 이를 틈탄 소련군에 의한 독립군 소탕으로, 만주지역에서는 독립군이 발을 붙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백선엽 장군에 의해 소탕된 한국계 독립군은 별로 없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국가를 구한 영웅에 대하여는, 그에게서 작은 흠집이 있더라도 큰 공을 뒤집으려는 시도보다는, 역사의 귀감을 삼아서 분명하게 예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고 백선엽 장군을 육군장으로 하기로 한 것도 국가를 위해 크게 공헌한 분을 국가장으로 할 수 있는 규정을 사용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국민들의 애국정신을 뭉개뜨리는 것과 같다. 고 백선엽 장군의 구국과 애국정신을 높이며,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기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논평
    2020-07-14
  • 정부가 교회를 콕 집어 규제하는 것은, 기독교만을 제대로 된 종교로 인정하는 것인가?
    • 오피니언
    • 논평
    2020-07-10
  • 한교총, “문제는 작은 모임이 아니라, 참여자의 방역지침 준수 여부이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7월 8일에 발표한 교회내 소모임 금지 및 단체식사 금지 의무화 조치는 그간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교회의 노력에 반하는 것으로서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서 교회의 모든 예배는 방역준칙을 지키는 선에서 허용하고 있지만, 이미 한교총과 교회협(NCCK)이 공동으로 교회내 소모임과 여름 교육행사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한 상황에서 중대본의 이번 발표는 지극히 관료적 발상의 면피용 조치로 심히 유감이다. 중대본은 “소모임을 통한 집단감염이 수도권과 호남권 등에서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하면서 그 원인으로 교회의 소모임을 지목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소모임은 그 안에서 확진자가 자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무증상) 확진자가 들어와 발생하였다. 일반 모임이 대부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교회의 소모임만을 감염의 온상이 된 것처럼 지목한 것은 확인과 수치화가 쉬운 점을 악용해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10% 이상의 감염원을 모르는 소위 깜깜이 확진자를 양산해온 방역당국의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교인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함께 식사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도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결국, 교회의 작은 모임을 교회당 아닌 카페나 식당으로 가서 하라는 요청이나 다름 없다. 지금 중대본은 현재의 방역단계에서 ‘모임이 문제가 아니라, 참여자의 방역지침 준수 여부’임을 간과하고 있다. 중대본은 이번 조치를 즉시 철회하고, 자발적인 방역지침 준수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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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7-10
  • 더러운 평화 때문에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가?
    최근 민간단체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 전단에 대하여 북한의 항의가 들어온 것을 기화(奇貨)로, 우리 정부와 대북 전단을 보내는 행위가 이뤄지는 지역의 지자체는 이런 행위에 대하여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하고 있다. 또 그러한 단체에 대해서도 정부와 지자체는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옹색한 여러 가지 법안을 들이대고 있다. 즉 남북교류협력법, 항공안전법, 해양환경관리법, 공유수면법, 옥외광고물관리법 위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동안은 왜 이런 법에 의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었는가? 그런 가운데 북한 지역에 지난 2005년부터 성경과 신앙에 관계된 자료를 보내는 선교단체에까지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어, 그 대응이 지나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일 “순교자의 소리” 선교단체가 북한 지역으로 성경을 보내다가 강원도 철원에서 경찰에 적발되었다. 이때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에 대하여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해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간첩행위나 마찬가지이다’라는 말로 규정하였다. 정말 그들이 간첩행위를 한 것인가? 북한의 지하교회와 공산권에 있는 숨은 기독교 성도들에게 성경을 보내는 것이 간첩행위란 말인가? 오히려 ‘주적’(主敵)을 주적이라 말하지 못하고, 주적의 말에 꼼짝 못하고 놀아나는 것이 더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여기는 자유와 인권이 유린당하는 북한이 아니라,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된 대한민국이다. 정부의 원칙 없는 갑작스런 규제에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오죽하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이게 평양인지 서울인지 헷갈린다’고 울부짖었을까? 이재명 지사는 ‘화려한 전승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했는데, 지금 더러운 평화를 위하여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희생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보장하는 ‘종교·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며, 북한 주민들의 자유도 신장시켜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묻고 싶다. 그동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계속되는 문제 발언에 대하여 일부 경기도민들의 반응은 ‘설화(舌禍)가 끝이 없어 보이니, 누가 이재명 지사의 입을 좀 막아 줄 수 없습니까?’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면서까지 지키려는 ‘더러운 평화’를 역사와 후대(後代)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오피니언
    • 논평
    20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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