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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가 같다는 무지한 정치인
    대구의 대현동에는 이슬람 사원(寺院)이 지어지면서 지역 주민들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지역민들은 자기들의 삶의 터전을 잃게 될까 봐 눈물로 정부와 지자체와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집회를 하였다. 지역 주민들이 밀집하여 사는 지역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만약 교회나 성당이나 사찰을 인구 밀집 지역에 짓는다면 건축 허가를 내 주겠는가? 이 사건은 2020년 9월 대구 북구청이 이슬람에 건축허가를 내주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에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함으로 2021년 7월 공사중지가 내려졌으나, 소송까지 가서 2022년 9월 대법원이 이슬람측의 손을 들어주므로(건축주) 다시 공사가 계속될뿐더러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는 주민들의 안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건축허가를 내준 행정 기관들의 안일한 생각, 법원들의 속단, 그리고 무책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사 속개 촉구 권고 등이 지역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슬람이 다른 보편적 종교들과는 다르게 매우 폭력적이고, 일방적이고, 상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슬람이 일으킨 가장 대표적인 사건을 기억한다면, 2001년 미국에서 이슬람에 의해 일어난 9•11사태일 것이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이 자그만치 3,000여명이다. 이슬람의 무자비와 무관용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에 찬 범죄 현장이 되었다. 그것이 이슬람의 정체이며, 속내이다. 이슬람은 자신들이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고, 일부 과격한 단체들만이 그런 폭력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은 수니파이든 시아파이든 모두 폭력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경전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슬람이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도시인 대구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유명한 국립대학인 경북대학교 인근에서 일부 구성원들과 함께, 그들의 둥지를 틀려고 사원을 짓고 있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는 종교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폭력성을 드러낼 근거지가 됨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위기 상황에 지자체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낸 발언을 하여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다름 아닌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그는 보수 정치권의 대표적인 정치 지도자로 여러 번의 국회의원을 거쳤고, 경남 지사와 대권 후보로, 그리고 지금은 대구시장에 있다. 그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하여 ‘이슬람의 뿌리는 기독교와 같다. 구약에서는 같고 신약부터 달라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20여년 전에 이슬람권에서 어떤 교수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이상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서로 증오하지 말고 포용하여 각자의 종교만 믿으면 됩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뿌리는커녕 아무 것도 같은 것이 없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일부 나온다고 하여, 같은 종교가 아니다. 홍 시장의 말대로 양 종교가 구약에서 같아지려면, 구약성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슬람의 경전에서 활동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인류의 구원주,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슬람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믿는 마흐메트만이 최후의 예언자라고 본다. 그런데 무엇이 같은 뿌리라는 것인가? 마치 홍 시장 아들의 이름과 다른 사람의 아들 이름이 같으니, 그가 내 아들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와 이슬람은 전혀 다른 종교이며, 이슬람의 문제점을 가리기 위하여 위장한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서구 유럽 가운데 프랑스는 1960년대 이슬람 사람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똘레랑스’(관용)을 차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은 무슬림(이슬람교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다문화주의(Multi Culturalism)가 사실상 실패하였다. 유럽이 실패한 ‘개방적 외국인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홍 시장이 대구시장이 된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에 대하여 함구하다가 느닷없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뿌리가 같다는 것도 그렇고, 각자의 종교만 믿으라는 이슬람을 두둔하는 발언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가 시장이면서도 지역민들이 위험에 처해도 이에 대한 처방은 내놓지 못하고 기껏해야 이슬람쪽에서 위장된 말로 사용되는 ‘뿌리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 이슬람에 대하여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볼 수 있으려면, 지금 전 세계에서 이슬람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폭력이 없어져야 한다. 자기들끼리도 죽이고, 타종교를 핍박하고,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일이 사라져야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 이슬람을 가볍게, 보편적 종교로 보았다가는 큰코를 다치게 될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런 근거 없는 말로 주민들을 압박하지 말고, 이런 발언을 한 것을 사과하고, 정말 무엇이 대구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를 분별하여 결단력 있게 행정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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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7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초등학생들에게 외설적 성관계, 동성애 조장 도서를 보급하는 여성가족부, 가족해체부인가?
    우리나라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 없는 행정조직이 하나 있다.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여성부’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여성가족부’가 되었다. 이 여성가족부(장관 이정옥. 이하 여가부)가 하는 일을 살펴보면, 여성정책의 기획의 종합 및 여성의 권익 증진, 청소년의 육성과 복지 및 보호, 가족과 다문화 가족정책의 수립과 조정과 지원, 그리고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 피해 예방 및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국가에서 제반 행정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여가부가 지난해부터 전국의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나다움 어린이책’을 배포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충격적이다. 그러한 책들 가운데는 동성애를 정상으로 가르치고, 남녀의 성관계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외설적이며, 초등학생들에게 조기 성애화(性愛化)를 한다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나쁜교육에 분노한 학부모연합”이라는 시민 단체에서 여가부가 배포한 책들의 분석한 것을 보면, ‘우리가족 인권 선언’(도서출판 노란돼지)에서 ‘엄마 인권 선언’ 가운데, 두 여성 커플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이 있는데 이것은 ‘동성혼’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혼한 후에 아이를 돌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데, 이는 이혼을 여성의 권리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같은 책의 ‘아빠 인권 선언’도 비슷한 내용이며, ‘딸∙아들 인권 선언’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하며, 자연스럽게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도서풀판 시금치)에서도 동성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와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고래가 숨 쉬는 도서관)에서는 남녀의 성관계 장면을 지나치게 노골화시켜, 초등학생들을 조기 성애화 시킨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종(異種) 간 결합을 통하여, 다양한 성적 취향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든지(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도서출판 키즈엠) 여성의 자위와 성관계, 피임법에 대하여 설명하며 콘돔을 권장하는 내용(걸스 토크-사춘기라면 정작 말해주지 않는 것들-시공사)들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여성가족부가 일선 초등학교에 배포하는 책들이 과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성교육서’인지, 아니면 지나친 성의 문제를 노골화하여 아이들에게 조기 성애화(premature sexualization)를 만들어서 ‘교육적폐’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는 영문으로 ‘Ministry Gender Equality and Family’로 쓴다. ‘여성’과 ‘가족’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회적 성 ‘Gender’를 사용함으로 여가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여가부가 하려는 것이, 어린 아이들을 바른 성교육과 인격체로 성장시키려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선과 악의 개념을 모호하게 하고, 교육의 기준을 하향평준화하여 인성을 타락시키면서, 오염된 세태에 맞추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따라서 여가부가 아동과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 그리고 여성과 가족의 바른 가치와 건전한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정의 해체, 도덕과 윤리의 타락, 아이들을 왜곡된 ‘성소수자’로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라도 여가부는 이런 잘못된 정책을 철회하며, 배포된 문제의 책들을 모두 수거하여 폐기하여야 한다. 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아이들과 국가의 장래를 망칠 일에 앞장서고 있는가? 이런 일에 국민들은 얼마나 인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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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7
  • 신적 기관인 교회를 사업장으로 착각했다
    "생활의 염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이다" 최근에 부목사, 법률가, 노동운동가, 신학생 등이 중심이 되어 소위 기독교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교회 내에서의 처우 개선과 또 하나는 교회 내 부조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의 기독교 노조는 성립될 수도 없으며 성공할 수도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먼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며, 또 교회법도 허용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교회의 구성 주체인 교인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 노조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이미 2004년에도 나왔던 것으로, 당시에도 목회자를 노동자로 볼 수 있느냐의 논란이 있었다. 2006년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 25부는 ‘부목사와 집사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했었고, 같은 해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에서도 교회와 부목사를 사용자와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통해 목회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고 있다. 노조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교회를 노동의 현장으로 보고 목회자를 노동자로 보는 견해에서 나온 주장이겠지만, 교회를 일반 직장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를 노조의 개념으로 보면 사용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사용자는 담임 목사나 장로 혹은 교인들이 아닌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을 허락하신 분이다. 거기에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주셨는데, 그 하나님께 더 많은 보상(報償)을 달라는 것인가? 둘째는 세속적 가치를 따라 복음의 본질을 저버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라고 말한다. 세속적 조직인 노조를 통하여 더 많은 소득을 얻고 권리를 쟁취한다는 것은 세상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며, 이는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복음의 본질을 저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목회자를 부르심은 이 땅에서의 만족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내세에 영생을 얻는 일에 매진하라고 부르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넷째는 교회 안에서의 다툼과 진리를 부정하는 투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노조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주장 가운데, 교회 내부 부조리에도 목소리를 낸다고 하면서 동성애 퀴어축제에서 동성애자들을 축복하여 그 교단으로부터 치리에 회부된 목사를 감싸는 행동부터 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처우 개선의 문제는 하나의 빌미일 뿐, 실상은 교회를 이용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겠다는 속내로도 보인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은 진리를 부정하는 심각한 오류이기도 하다. 교회 내에서 목회자들에 대한 처우 문제는 교회 안에서 고민하고 공동체가 합의할 문제이지, 세속적 노조를 설립하고, 민주노총과 같은 외부 권력 집단을 끌어들여 교회를 정치집단화·권력화 하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들의 주장은 교회법과 공동체의 노력으로 해결 되어야 하며,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교회는 사업체가 아니고, 계급투쟁을 일으키는 현장도 아니다. 또한 성직자가 노동자가 아님은 이미 명백하며, 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과 영적 지도자로써도 본이 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양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욕심과 명예와 물질에 대하여 초연(超然)하며, 죄인 된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모든 육체적 정욕도 함께 버린다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것을 잊지 말라. 교회 안에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교회가 아닌, 회사를 만들어서 그 목적을 이루면 될 것이다. 적어도 성직자가 된 사람은 성속(聖俗)을 구별하고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야 한다. 그래도 알아 듣지 못한다면, 이름만 성직자이지 하나님의 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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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석방을 위해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최근 미국의 청원 전문 사이트인 ‘체인지 닷 오그’(change.org)에는 지난 2013년 이후에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 6명의 석방을 위한 행동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 ‘세이브 식스 코리언’(save 6 korean)은 청원이 완료되면, 한국 정부, 한국 대통령, 한국 국회,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사항을 전달할 것으로 밝히고 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 6명은 누구인가? 김정욱 선교사는 2007년부터 탈북자들을 위한 대피소를 중국 단둥에서 운영해 왔다. 그러다가 2013년 10월 북한에 의하여 체포되어 2014년 하루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형을 선고 받고, 현재까지 구금된 상태이다. 그리고 김국기 선교사는 2003년부터 탈북자들을 위해 중국 단둥에서 피난처를 운영하다가, 2014년 10월에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2015년 6월 고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최춘길 선교사는 2014년 10월에 체포되어 다음해 6월에 역시 고된 노동형에 처해졌다. 북한이 이들 선교사를 체포·구금하고 억류하는 이유는 그들이 반국가 활동, 국가 전복, 간첩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탈북민들을 도운 것뿐이다.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은 이미 ‘난민’과 같으므로,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장 7년 이상을 강제노역과 심각한 인권 침해를 하는 것은 반인도적이며 비이성적이며, 정상적인 국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자 출신의 김원호, 고현철, 함진우 씨가 북한 주민을 위하여 일하는 선교사들을 돕는 일을 하다가, 역시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현재까지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다. 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2018년에 남북의 정상이 3번이나 만나는 일이 있었지만, 회담에서 자국민의 석방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과 우리 정부는 거창한 ‘평화’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억울하고도 강제로 억류되어 있는 무고한 우리 국민들부터 석방하여, 한반도의 평화를 주장하는 것들이 진정성이 있음을 증명하기 바란다. 우리 정부는 적어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우리 국민 6명의 생사의 문제, 건강의 문제만이라도 급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이들의 석방과 귀환을 위해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나서야 하는데 국제 사회가 먼저 나선 것도 창피한 일이지만, 억류자들에 대한 정확한 실제 상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수치스런 일이다. 이번에 통일부장관은 북한에 1,0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했는데, 무턱대고 지원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석방하는 조건이라도 달아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3명을 귀환시켰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는 자국민의 보호와, 강제로 억류된 우리 국민의 석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책무가 아닌가? 국민 없는 국가가 없으며,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정부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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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7
  • 정권과 권력의 위기는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새삼스러운 말이 아니지만, 정권은 국민에 의해서 탄생되며, 국민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권력과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권세를 허락하신다. 현 정권,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을 탄핵으로 몰아 붙여 촛불로 탄생된 정권이다. 전 정권을 탄핵한 근거가 합당하다면, 현 정권은 그 합당한 근거에 의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로 보답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현 정권이 표명했던 정책과 주장들에 대하여는 성과를 보였어야 했다. 전 정권에서 무너졌었다는 공정·공평·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했는데, 최소한의 성과가 아니라 정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현 정권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에 현 정권과 여권에서 만들어내는 일들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자신들에게 기회를 준 국민들을 의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더 나아가서 왜 이 정권을 선택했는지를 후회한다는 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한 예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사태에 대하여정부와 여당이 취하고 있는 태도이다.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도 묻어 두려고 하고, 알려진 바대로 성추행이 원인이라면 비서 여성에게 진실된 사과와 함께 피해보상과 위로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는 그간 고 박원순 전 시장과 현 정부의 주장과 인권정책에도 부합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목소리를 높여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한 이들이 누구인지 국민들은 알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알려진 대로 인권변호사이며, 시민운동가이고, 페미니스트를 적극 지지하고,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이기도 하였다. 그런 박 전 시장이 수년간 여비서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피의자의 주장이라고 하는데, 외부 인사를 통하여 사실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직도 믿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는 것은 사건 내용이 너무도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8년 안희정 충남지사에 의한 ‘미투 사건’과 올해 오거돈 부산시장에 의한 ‘미투 사건’이 있어 사회적으로 시끄러울 때에도 그러한 행동을 멈추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진보논객 진중권 씨는 이런 더불어민주당을 ‘더듬어만지당’이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고 박 전 시장이 불미스럽게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님의 뜻을 기억 하겠다’는 현수막이 서울 곳곳에 나부꼈다. 도대체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에는 여성 의원들도 많다. 그 중에는 페미니즘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도 여럿이 있다.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할 사람들이 그들이 아니었나? 더욱 가관인 것은 소위 친문(親文) 세력이라는 인사들이 피해자에게 2,3차 가해를 한 것이다. 참으로 못 믿을 행위를 국민들은 똑똑히 보고 있다. 여권에서는 아직도 피해 여성을 ‘성 추행 피해자’라고 하지 않고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한다. 거대한 권력을 가진 여당이 그동안 선전해온 대로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그 입장에 서지 않고, ‘여론 재판’이나 ‘상징 조작’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충격적인 것은 6·25전쟁의 영웅이며, 국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한 국가·정부적 예우이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고 백선엽 장군은 우리나라를 공산화의 위기, 백척간두에서 구한 분명한 영웅이다. 그런데 유해(遺骸)를 서울 국립현충원에 정중히 모셔야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대전 현충원에 모시는 것도 ‘친일’을 볼모로 옥신각신하였다. 참으로 민망하고 볼썽사나운 추태이다. 오히려 미국 쪽에서 더 영웅으로 대접하고 그의 공로를 추켜세웠다. 지난 15일 장례식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청와대는 공식적인 추모 메시지나 논평조차 없었다. 전쟁 영웅에게 이렇듯 홀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부정이며, 부끄러운 국가와 정부의 민낯을 국제사회에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망신이다. 고 백선엽 장군의 안장식 후에도 국가의 영웅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국가가 보여주었다. 국가보훈처는 15일 안장식 후 다음 날인 16일, 고 백선엽 장군의 정보란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문구를 넣었다. 왜 백선엽 장군이 ‘친일 반민족 행위자’란 말인가? 이들의 주장은 과거 고 백선엽 장군이 만주의 간도특설대에 장교로 있으면서, 일본군 입장에서 독립군을 소탕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몰 역사요, 역사왜곡이다. 고 백 장군이 근무할 1943년 당시에는 만주에 독립군은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21년 6월, 소련 공산군대가 3,900여 한인 무장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 이른바 자유시 참변(自由市慘變)이후 독립군은 만주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931년 만보산 사건 이후 1937년에서 1945년 일제의 패망 때까지 일본군 최정예 부대 100만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만주에 무슨 독립군이 활동했다는 말인가?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은데, 어찌 있지도 않은 독립군을 소탕했다면서 역사까지 왜곡하는 재주를 부리고 있는가? 현 정권의 실정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최근에 젊은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서민들에게 혼란을 주는 부동산 문제, 박원순 등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미투 사건 등이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언어 유희적 장난만 보인다. 여권의 ‘국민 막보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 박원순 시장을 조문하고 나오는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성추문 사건에 당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기자에게 욕을 했다고 한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언론 기자에게 대답은 못할망정 욕을 했다는 것은 오만과 방자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때문이다. 현 정권과 여당의 실정은 한 마디로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고, 자기편만을 감싸 주는 ‘내로남불’의 의식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 시민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을 향하여 신발을 집어던졌을까? 지금 국민들의 마음에는 너도 나도 신발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진보계의 원로 학자이며, 서울대 명예교수인 최장집 교수는 ‘촛불 시위 이후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가는 전환점으로 기대됐지만,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고, 그 이유는 ‘문 정부가 집권하면서 당·정·청에 유입된 운동권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와 여권 극렬 지지층인 이른바 ‘문빠’세력이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왔다’고 하였다. 현 정권에서 핵심에 있거나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에 대하여, 그들의 출신학교에서는 ‘부끄러운 동문’이나 ‘가장 부끄러운 교우’를 매겨서, 그들이 부끄럽게도 1,2,3등을 달리고 있음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국민들이 지지하여 탄생한 정권이 잘 되는 것은 국민의 행복이 된다. 그러나 반대 현상으로 간다면 국민의 불행은 말할 것도 없고, 정권의 마침도 불행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이라도 정부와 여당은 국민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권력으로 새로워져서 진정으로 국가 발전을 위한 목민·애국정치를 펼쳐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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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0
  • 고 백선엽 장군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다
    고 백선엽 장군이 10일 100세로 별세하였다. 그의 죽음을 두고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국군 장병을 대표해 한평생 대한민국과 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백 장군에게 높은 경의를 표하고 가슴 깊이 추모한다. 군은 백 장군의 숭고한 헌신과 투철한 군인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하였다. 정확한 표현이다. 2010년 육군 1사단은 백 장군의 전승과 공적을 기념하는 비석을 제막하였다. 군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육군도 최근 보도자료에서 ‘고 백 장군은 1950년 제1사단장으로 취임해 낙동강지구 전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한국군 최초로 합동작전을 통해 대승을 거둬 반격 작전의 발판을 제공했다. 같은 해 10월 국군 1사단이 먼저 평양을 탈환해 민족의 자존심과 국민의 사기를 드높였다’고 하였다. 2013년 주한 미군은 백 장군을 미8군 명예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이유는 ‘한국 전쟁 때 조선민주주의공화국(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는데 탁월한 업적을 세운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2017년 백 장군의 생일 파티에서는 미국의 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대사가 무릎을 꿇고 백 장군을 맞이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백 장군은 조국이 공산군의 불법 침략 앞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조국을 지키고 구한 일대 영웅이다. 그런데 고 백 장군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친일파로 국립현충원에 모셔서는 안 된다’는 말로 고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리배들이 있었다. 그런데 별세 하신 후에도 그런 말들이 나온다. 한 마디로 백 장군과 같은 분들이 목숨 걸고 희생하고 충성한 바탕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지금은 자신들이 등 따뜻하고 배가 부르니 트림하는 가벼움으로 들린다. 물론 이 분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나와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항일 독립군이나 조선인을 괴롭혔다는 것은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다. 고 백 장군이 만주국 간도특설대로 근무할 당시인 1943년에는, 이미 1920~1930년대 일본군에 의한 독립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1921년 소련 영토인 자유시(스보보드니)에서 독립군의 분열과 함께 이를 틈탄 소련군에 의한 독립군 소탕으로, 만주지역에서는 독립군이 발을 붙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백선엽 장군에 의해 소탕된 한국계 독립군은 별로 없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국가를 구한 영웅에 대하여는, 그에게서 작은 흠집이 있더라도 큰 공을 뒤집으려는 시도보다는, 역사의 귀감을 삼아서 분명하게 예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고 백선엽 장군을 육군장으로 하기로 한 것도 국가를 위해 크게 공헌한 분을 국가장으로 할 수 있는 규정을 사용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국민들의 애국정신을 뭉개뜨리는 것과 같다. 고 백선엽 장군의 구국과 애국정신을 높이며,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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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4
  • 자살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박원순 시장이 주는 교훈
    News,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혐의 가운데 돌연 자살 10일 새벽 박원순 서울시장이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박 시장의 사인을 조사 중이며,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 서울시장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직후 일어난 일이다. 일단 박 시장이 사망하므로 성추행 혐의 사건은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생전에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3선으로 서울시 행정을 이끌어왔다. 특히 그는 재임 중에 ‘동성애 축제’ 개최를 허가해서 사회적 분란을 야기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도 성추행 혐의로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Bible,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음란에 넘어지고, 회개하지 않은 실수를 범한 박원순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49:16~20 1.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생각, 내 방법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멸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살아가게 된다. 특히, 하나님은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저주하신 일이다. 그런 동성애를 조장하고 옹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이다.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2. ‘음란한 영에 미혹 당한 것’ 보이지 않는 마귀 대적이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가 음란이다. 육신의 정욕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계략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대부분 사람은 음란에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 마음에 거룩함이 없으면 위험하다. 결국, 음란에 넘어진 것은 그 마음 가운데 정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것만이 마귀의 미혹과 유혹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이다.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서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베드로전서2:18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14 3. ‘회개하지 않은 것’ 사람은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개이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통회자복 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다. 피조물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께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목숨을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자살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배반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자신의 죄를 가리려고, 또 알량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이는 또 사후에 심판이 있음을 알지 못한 미련한 행위이기도 하다. 분명히 하나님은 육신의 죽음 후에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행여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편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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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7-13
  • 정부가 교회를 콕 집어 규제하는 것은, 기독교만을 제대로 된 종교로 인정하는 것인가?
    • 오피니언
    • 논평
    2020-07-10
  • 한교총, “문제는 작은 모임이 아니라, 참여자의 방역지침 준수 여부이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7월 8일에 발표한 교회내 소모임 금지 및 단체식사 금지 의무화 조치는 그간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교회의 노력에 반하는 것으로서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조치에서 교회의 모든 예배는 방역준칙을 지키는 선에서 허용하고 있지만, 이미 한교총과 교회협(NCCK)이 공동으로 교회내 소모임과 여름 교육행사 자제를 강력하게 권고한 상황에서 중대본의 이번 발표는 지극히 관료적 발상의 면피용 조치로 심히 유감이다. 중대본은 “소모임을 통한 집단감염이 수도권과 호남권 등에서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하면서 그 원인으로 교회의 소모임을 지목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소모임은 그 안에서 확진자가 자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무증상) 확진자가 들어와 발생하였다. 일반 모임이 대부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교회의 소모임만을 감염의 온상이 된 것처럼 지목한 것은 확인과 수치화가 쉬운 점을 악용해 안이하게 대응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10% 이상의 감염원을 모르는 소위 깜깜이 확진자를 양산해온 방역당국의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교인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함께 식사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도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결국, 교회의 작은 모임을 교회당 아닌 카페나 식당으로 가서 하라는 요청이나 다름 없다. 지금 중대본은 현재의 방역단계에서 ‘모임이 문제가 아니라, 참여자의 방역지침 준수 여부’임을 간과하고 있다. 중대본은 이번 조치를 즉시 철회하고, 자발적인 방역지침 준수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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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7-10
  • 더러운 평화 때문에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가?
    최근 민간단체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 전단에 대하여 북한의 항의가 들어온 것을 기화(奇貨)로, 우리 정부와 대북 전단을 보내는 행위가 이뤄지는 지역의 지자체는 이런 행위에 대하여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하고 있다. 또 그러한 단체에 대해서도 정부와 지자체는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옹색한 여러 가지 법안을 들이대고 있다. 즉 남북교류협력법, 항공안전법, 해양환경관리법, 공유수면법, 옥외광고물관리법 위반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동안은 왜 이런 법에 의한 규제를 하지 않고 있었는가? 그런 가운데 북한 지역에 지난 2005년부터 성경과 신앙에 관계된 자료를 보내는 선교단체에까지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어, 그 대응이 지나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일 “순교자의 소리” 선교단체가 북한 지역으로 성경을 보내다가 강원도 철원에서 경찰에 적발되었다. 이때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에 대하여 ‘외국인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해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간첩행위나 마찬가지이다’라는 말로 규정하였다. 정말 그들이 간첩행위를 한 것인가? 북한의 지하교회와 공산권에 있는 숨은 기독교 성도들에게 성경을 보내는 것이 간첩행위란 말인가? 오히려 ‘주적’(主敵)을 주적이라 말하지 못하고, 주적의 말에 꼼짝 못하고 놀아나는 것이 더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여기는 자유와 인권이 유린당하는 북한이 아니라,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된 대한민국이다. 정부의 원칙 없는 갑작스런 규제에 국민들은 당혹스럽다. 오죽하면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이게 평양인지 서울인지 헷갈린다’고 울부짖었을까? 이재명 지사는 ‘화려한 전승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했는데, 지금 더러운 평화를 위하여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희생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보장하는 ‘종교·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며, 북한 주민들의 자유도 신장시켜 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묻고 싶다. 그동안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계속되는 문제 발언에 대하여 일부 경기도민들의 반응은 ‘설화(舌禍)가 끝이 없어 보이니, 누가 이재명 지사의 입을 좀 막아 줄 수 없습니까?’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면서까지 지키려는 ‘더러운 평화’를 역사와 후대(後代)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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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 대다수의 국민들을 역차별할 ‘차별금지법안’ 발의되다
    제21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다시 차별금지법안이 29일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번에 입법발의에 동참한 의원은 장혜영 강은미 류호정 심상정 이은주(이상 정의당) 강민정(열린민주당) 권인숙 이동주(이상 더불어민주당) 용혜인(기본소득당) 등 10명이다. 이들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 신분 등 23가지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헌법이념을 실현한다는데 그 이유를 삼고 있다. 이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정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 가운데 핵심은 역시 ‘동성애’와 관련된 조항이 많다. 가족 및 가구의 형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 그렇다. 이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차별시정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시정기본계획 권고안을 마련하여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중앙행정기관 등은 세부시행계획을 수립하고, 그 이행결과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안에는 징벌적 조항을 두어서, 시정명령 불이행시 3천 만원 이하의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고, 차별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손해액 이외에 배상금을 손해액의 2~5배로 지급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날, 2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시민단체와 법조계,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단체 등 500여개가 합하여 발족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 나쁜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 창립준비위원회 발족식에서 김기수 변호사(자유와통일을향한 변호사연대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며, 성소수자를 권력에 이용하는 것이고, 특수한 가치를 법률로 강제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또 명재진 교수(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헌법적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뒤엎으려는 것이며, 동성애는 이데올로기 투쟁이고, 국제법이나 조약에도 없는 내용이라’고 하였다. 또 조영길 변호사(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에는 처벌조항이 들어가는데, 이는 사법부에 대하여 법을 해석하게 하므로, 전반적으로 동성애 반대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며,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반동성애로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13년에도 66명의 국회의원들이 대대적으로 입법하려다가 국민들의 저항을 받아 중지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을 ‘역차별’하려는 차별금지법을 굳이 계속 발의하는 의원들의 강박증과 조급증이 딱할 뿐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각 분야별로 차별을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이미 있다. 이제 국민의 힘으로 역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을 막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 되었다. 교계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어이없는 행위도 있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될 때, 교회와 가정, 사회와 국가가 입게 될 치명상은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차별금지법에서 지향하는 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그 독소조항과 폐해를 알게 된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법안임을 금방이라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국민들은 차별금지법을 만들려는 의원 앞에서 결코 우매하지 않으며, 그들의 잘못된 입법 활동에 속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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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7-03
  • 좋은 아빠란 누구인가?
    어떤 아빠들은 자녀가 유치원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벌고 여유가 생기면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때가 되어 아빠가 갑작스럽게 친한 척을 하면 아이들이 좋아할까? 어색해하고 당황해 하면서 아빠를 피하게 될 것이다. 아빠 역시 갑작스럽게 습관과 행동패턴을 바꾸기 어렵다. 결국 신생아 때부터 아이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양육에 참여하는 아빠를 만드는 것이다. 초보 아빠가 양육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모유수유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가능하다. 만약 모유수유를 하지 않고 분유를 먹인다면 아빠의 양육 참여가 엄마보다 적거나 못할 이유는 사라진다. 구체적으로 목욕시키기, 옷 갈아입히기, 기저귀 갈기, 재우기, 달래기, 마사지하기, 분유 먹이기 등이다. 당연히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다. 아빠가 자녀의 양육에서 방관자가 되지 않으려면 신생아 때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시행착오가 많아 아내의 타박을 듣더라도 반드시 배워야 한다. 아내 역시 남편이 훌륭한 양육자가 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이 아빠효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질의 문제이다. 즉, 아빠들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아이와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엄마가 없으면 당황하는 아빠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아빠들은 아이와 단둘이 있는데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와 단둘이 있을 때 아래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다음과 같이 대처하는 것이 좋다. ◈ 놀아달라고 할 때 아이와 몸놀이를 자주 하라. 아빠는 아이와의 대화에 능숙하지 못하지만 엄마에 비해 아이를 던져 받아 안거나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이 몸을 사용하는 놀이에는 강하다. 그래서 아빠와의 놀이 경험은 아이가 사회성을 기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더구나 아빠의 놀이는 기발하고 새롭기 때문에 창의력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아이는 아빠가 어떻게 놀아주었느나보다는 아빠와 함께 했다는 데 만족감과 안정을 느낀다. 만약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를 때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아이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이라면 어떤 놀이를 좋아하고 원하는지 물어보고 어느 정도 놀아준 후 아빠가 제안한 놀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아빠의 힘과 몸을 이용해 놀아주면 아이는 더 좋아한다. 이렇게 자신의 에너지를 표출시키는 에너지 놀이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아빠와의 교감은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아이는 아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아서일 뿐이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다고 아빠와의 애착이 나빠지는 건 아니다. 평소 엄마가 어떻게 해주는지, 엄마와 무엇을 했을 때 좋았는지 물어보고 아빠와는 이런 놀이를 해보자며 아빠와의 놀이를 제안해보는 것도 좋다. 아이는 아빠와의 신나는 놀이를 기대한다. ◈ 떼를 쓸 때 객관성을 가지고 아이의 훈육에 참여하라. 아빠는 가끔 야단을 칠 때도 감정개입이 없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의 말을 더 잘 듣는다. 아이가 밖에서 다쳐서 들어오면 엄마는 아이가 다친 것에 공감을 하지만, 아빠는 전후 상황을 먼저 파악하여 아이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면 우선 지적한다. 이러한 시각은 아이로 하여금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고 강한 아이로 만든다. 그러나 아이를 훈육할 때, 너무 권위적이면 일단 아이는 복종적이지만 아빠가 지시하지 않으면 스스로 하지 않는 아이가 될 수 있다. 또한 떼를 쓴다고 무조건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아이는 그 상황을 나중에도 이용하게 될 것이고, 반면 무조건 혼을 내면 아빠를 계속 피하거나 무서워할 수도 있다. 때문에 먼저 왜 떼를 쓰는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은 들어주고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설명한다. 아이들도 이유를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수긍한다. ◈ 잘 한 일을 보았을 때 결과보다는 의도나 과정을 칭찬하라. 아빠의 칭찬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한다. 아이가 잘했을 때 결과보다는 잘한 일을 한 의도나 잘한 일을 한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양보하는 것을 보니 남에 대한 배려심도 늘고 어른스러워졌구나'라고 과정과 의도를 칭찬해주는 것이 좋다. ◈ 질문할 때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다. 더욱이 아빠는 아이 눈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있으면 질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 말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왜요?”라며 반복적으로 묻더라도 절대로 짜증을 내지 말자.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막힐 때는 “아빠도 잘 모르는데 나중에 꼭 알아내서 다시 얘기해줄게”라고 설명하자. 그러면서 아이에게 논리와 수학을 가르쳐라. 영유아기 때 아빠가 없었던 아이들은 수리 능력이 떨어지고 성취동기도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이와 공감적인 대화는 잘 하지 못하지만 아빠가 아이의 교육에 참여하면 아이는 학습에 있어서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수학 실력 등이 향상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외출할 때 아빠들은 아이가 떼를 쓰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날까 봐 아이와 외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게다가 딸아이를 데리고 외출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거나 떼를 쓰며 길거리에 주저앉아 버리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려워도 엄마 없이 외출하는 것은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에 좋다. 또한 아빠가 이를 통하여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아빠는 엄마보다 더 도덕적인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이에게 도덕성을 가르치는 것은 아빠가 더 적합하다. 아빠는 힘들더라도 도덕적이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빠가 먼저 식사 예절을 지키고, 교통규칙을 지키며, 차례를 잘 지키고, 부모가 먼저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 책 읽어달라고 할 때 아이를 품에 안고서 그림책을 읽어주어라. 독서는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두뇌발달도 촉진하여 창의적이고 지식이 풍부한 아이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들어있는 그림책은 좌우뇌를 모두 발달시키는데, 아빠는 목소리와 배경지식에 있어서 엄마와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빠와 책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아빠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책의 내용을 들으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한다. 이때 짜증 내지 않고 등장인물에 따라 대화체도 바꿔가며 열심히 읽어주는 게 중요하다. 책 내용이 짧다고 다 읽었다며 금세 덮지 말고 한 번 더 읽어달라고 하면 또 읽어주고, 책 내용으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아이와의 대화를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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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6-29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는 일자리’와 ‘생길 일자리’
    넉 달 째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출퇴근 중이다. 간신히 다시 연 학교엔 일주일에 한 번만 간다. 그나마 수업 시간이 줄고, 급식 전 집에 가는 아이가 태반이다. 날마다 엄마 따라 네다섯 군데 방송국을 도는 아들은 입이 댓 발 나와 있다. “대체 이게 뭐야!” 미처 답하지 못했다. “나도 살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어.” 반 년째 열 살 어린이의 발을 묶어둔 그건, 바로 처음 만난 바이러스 ‘코로나19’다. 교육열로는 어느 나라에도 안 밀릴 한국에서 학사 일정까지 바꾸게 할 만큼 강력한 변수다. 원인과 전파경로가 뚜렷하지 않고, 백신도 기약이 없으니 일명 ‘3밀(밀폐,밀접, 밀집)’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 한다. 경제는 사람이 만나고 모일 때 움직인다. 사람 사이의 빈번한 교류가 소비를 낳고, 소비가 개발을, 개발이 제조를, 제조가 운수를, 그리고 이 과정에 생기는 부가가치가 다시 서비스업을 키운다. 소비에서 서비스까지 일련의 과정에 우리는 모두가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기여한다. 그러니 ‘3밀 포비아의 시대’와 경제 부흥은 평행선의 양 끝이다. 간신히 버텨온 자영업, 안 그래도 부족한 일자리, 가뜩이나 부실했던 경계 기업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 천수답 농사짓듯 백신만 기다리는 게 답일까. 단언컨대 ‘언택트 시대(비대면)’에 기다리는 자에겐 기회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했다. 오프라인의 ‘3밀’은 2020년 우리 경제의 적이지만, 온라인 ‘3밀’은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온라인 교육·화상 서비스 회사 ‘줌(ZOOM)'의 성장이다. 지난 2011년 중국계 미국인 에릭 위안이 설립한 세계 최대 화상회의 솔루션 업체 ‘줌’은 코로나19 이후 산업 구조와 삶의 변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이용자가 1000만 명 수준이었지만,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올해 3월에는 2억 명, 4월에는 3억 명이 ‘줌’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일하고 배우고 만났다.(출처 : statista) 덕분에 올해 1분기 ‘줌’의 매출은 1년 전 같은 달보다 169%나 늘어난 3억2830만 달러(한화 약 3989억 원)를 기록했다.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주식의 가격은 올해 초보다 202% 오른 207.6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시가총액은 500억 달러(한화 60조7450억 원)를 돌파해 유명 가상화폐업체 이더리움을 뛰어 넘었다(6월 11일 현재). 미중 갈등에서 시작된 이른바 ‘줌 금지령’ 속에서도 당분간 이런 흐름은 더 견고해질 전망이다. 석유 화학이 울상을 짓고, 해운과 항공이 무너지고, 자동차 회사가 간판 내리길 고민하는 이때에 그저 온라인에서 업무와 교육이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솔루션이 이룬 성과는 놀랍다. 중요한 건 이런 변화가 더욱 빠르고 강하게 우리 삶을 바꿔놓으리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IT 기술과 제조 능력을 함께 보유한 한국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 기존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정도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나 기업)가 될 적기다. 언택트 시대의 기본은 탄탄한 통신망과 고성능 모바일 기기다. 그간 통신망을 잇는 네트워크 장비 부문에선 중국과 북유럽 업체들에게 밀렸던 게 사실이다. 2018년 기준으로 화웨이가 전체 시장의 29.8%를, 에릭슨과 노키아가 각각 24.9%, 20.4%를 차지한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한국이 상용화 시대를 연 5G 장비 분야에선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지난해 3분기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3%로, 1위 화웨이(30%)와 한 자릿 수 이내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잘 지켜왔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삼성은 약 20%, 화웨이가 16%를 차지했다. 애플은 10%에 그치지만 고가의 하이엔드 시장 비중이 높아 부가가치가 크다. 글로벌 상위 5개 업체 중 3곳이 중국 업체라는 건 두렵게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IT 중심의 한국판 뉴딜’은 시의적절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산업으로 피부에 와닿는 경제 충격을 설명하는 데엔 한동안 어려움이 있겠지만, 인프라 산업이되 시멘트와 토목이 아니며, 제조이되 자동차 석유가 아닌 뉴 노멀을 강조하는 건 피해갈 수 없는 흐름이다. 통신과 그에 기반을 둔 장비. 그리고 여기서 유발될 다양한 일거리와 서비스. 정부가 강조하는 ‘한국형 뉴딜’은 사실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 설명은 이 부분에 보다 방점을 둬야 한다. 코로나19 소나기를 피해가는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결국 정부의 기능은 일자리를 주는 게 아니라, 일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형 뉴딜’을 통한 향후 고용정책의 중심은 반드시 5G 관련 산업 선점에 둬야 한다. 피상적인 인력 확대 등의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전공대 설립의 사례처럼 관련 산업의 기틀이 될 사람을 키우고 공공 부문의 수요 창출이 어느 방향으로 이뤄질 것인지 확실한 시장을 열어주는 게 급선무다. 가을이 지나면 잎이 진다. 가는 계절을 되돌릴 순 없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지는 일자리’에 대한 애도보다 ‘생길 일자리’를 찾아내는 일이 급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46만 명이 사망한 지금도, 인류 최대의 고민은 감염(64%)보다 먹고 살 걱정(77% : 칸타, 2020, 아시아 6개국 ‘디지털 버즈 분석 조사’)이 더 크다는 게 민심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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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0-06-25
  • 역사를 ‘처벌법’으로 강제하려는가?
    21대 국회가 개원하고 나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역사 왜곡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소위 ‘역사왜곡 금지법’을 만든다고 한다. ‘5.18민주화운동법’도 개정한다고 한다. 그 개정의 주요 내용은 ‘일제강점기 전쟁 범죄, 5.18민주화운동, 4.16세월호 참사를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를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물린다’는 것이다. 특히 5.18을 부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듯하여 일명 ‘5.18역사왜곡처벌법’으로도 불린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 이후에 여러 차례 개정이 되었다. 그런데 과거에도 이번 법안처럼 처벌을 위한 법안들이 발의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예술, 학문, 연구, 학설, 보도 등을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할지라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개정하려는 법안에는 그러한 면책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강력한 내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법률 개정안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강력한 주장들이 나왔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역사 왜곡에는 무관용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 한다’는 입장들을 피력했다고 한다. 5.18사건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피해자나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큰 아픔일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5.18에 대하여 첨예한 논쟁이 계속 있어 왔다. 역대 정권에서도 이에 대한 규정의 변화가 있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광주사태’로,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그리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김대중 정부에서는 ‘5.18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었다. 이를 통하여 5.18 당시 희생되고 고통당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는 국가가 찾아준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다. 그래서 21대 국회에서는 반대에 대한 철저한 봉쇄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광범위해서 자유로운 대화, 토론,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민주주의를 위한 절차와 방법이다. 비판과 반대가 없는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판단이다. 이 같은 헌법적 자유를 모르는 바가 아닐 터인데도 불구하고,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해서, 이른바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밀어붙이겠다는 현 여당의 자세는 다수 독재의 횡포에 다름 아니라고 보며, 이는 빅브라더의 출현인가? 라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역사를 법의 강력함으로 가두려하는 그 국가를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교과서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 때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어떠했는가? 역사 문제를 획일적이고 단순화하며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인가? 영국이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처벌하지 않는다. 이것을 역사가들의 논쟁에 맡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자유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99% 자유는 자유가 아니고, 100%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앞으로 정부·여당의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역사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모조리 처벌∙처단한다면,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계 역사학계의 역사에 대한 정의는 ‘역사는 해석이라’고 한다. 역사는 수학공식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조급증∙강박증이 있는 것인지? 또한 역사해석을 달리하면 큰 문제라도 생기는 무슨 두려움이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절대 다수의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힘을 국민들이 만들어준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에 반하게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보복적이고, 처벌적이고, 협박식이고, 분노식으로 하는 정치는 독재자들이 훨씬 잘한다. 다수의 결의가 반드시 정의가 아닌 것은 역사가 증거 한다. 법을 엄하게 하여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백성 다스림을 유리하게 하려던, 기원전 3세기 중국 진나라의 이사(李斯)는 자기가 만든 그 법에 자기가 죽지 않았던가? 지금 온 나라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모두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렵고, 거기에다 북한은 별별 핑계로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온갖 협박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막강한 입법의 힘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국민들을 법으로 옭아매려는 시도는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이며 위험한 일로 보인다. 제발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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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평
    2020-06-19
  • “평화로 가는 대로를 닦자”
    한교총은 6.25 성명서를 류정호 목사(한교총 대표회장, 기성 직전총회장)와 진희근 목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 이사장)가 발표했다. “동족 간에 벌인 3년여의 전쟁은 한반도를 초토화시키고, 민족의 가슴에 깊은 원한을 심어 놓았다. 전쟁이 멈춘 뒤로도 조국은 분단과 남북간의 적대정책으로 비극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아픔은 가실 길이 없다. 동북아를 둘러싼 강대국의 세력 다툼은 남북의 평화의 걸림돌이 되어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며, “판문점의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잠시 보이던 평화의 그림자는 다시 냉기류에 스러지고 있다. 남북이 화해와 공존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도 삼고, 다가올 죽음을 피하지 않고 순교의 면류관을 받아든 산돌 손양원 목사의 사랑이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을 찾게 한다. 분단의 갈등을 넘어서는 화해의 길은 용서와 사랑의 순교정신으로 열 수 있다.”고 진단하고, 7개 항을 제시한다. 1. 우리는 인간이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켜 이웃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훼손하였으나, 오직 평화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과 은총의 선물임을 믿는다. 2. 정부는 휴전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주변국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정착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3. 여야 정당은 오직 민족의 공존과 국익을 위해 민족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온 것을 반성하고, 신뢰회복으로 교류와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라. 4.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익에 편승한 한반도의 영구분단 정책을 내려놓고 분단된 민족, 분열된 가족의 교류를 보장하라. 5. 한국교회는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무력과 대결을 통한 적대시 정책을 거부하며,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데 헌신할 것이다. 6.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북한 동포들에게 인도적인 주의 사랑의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7. 한국교회는 다음세대를 통일세대로 키워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선도하는 민족의 과제를 수행하는데 힘쓸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2020-06-19
  • 6.25전쟁 70년, 전쟁도 비극도 끝나지 않았다
    올해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다. 이 전쟁은 역사상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 중에서 가장 큰 전쟁이었다. 피해 규모로도 가장 큰 것이었으며, 군대를 파견하여 함께 싸워준 유엔군이 16개 국가이며, 그 외 의료지원, 물자지원, 복구지원 등 51개 국가가 참여했으니, 가히 세계대전이라고 이름붙일 만하다. 6.25전쟁은 어떤 구실과 변명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김일성의 북한 공산군이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의 절대적인 지원하에 벌인 용서 못할 민족반역의 범죄 행위이다. 이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이었으며 그 피해가 컸었는가는 몇 장의 사진이나 기록물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물질적인 피해는 복구하였으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은 수많은 이들의 슬픔을 무엇으로 보상한단 말인가? 어떤 이들은 비애를 마음에 품고 무덤으로 내려갔으나, 어떤 이들은 기나긴 시간이 지나간 지금도 이를 잊지 못하며, 비극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많다. 우리들이 6.25전쟁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형이라는 것과, 역사의 비극을 잊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 방심하면,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을 수 없으며 잊어서도 안 되는 이 전쟁은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로 민족통일을 이루어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이 만나서 맺은 6.15선언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북한은 우리 대한민국을 향하여, ‘모든 것을 적(敵)으로 돌린다’는 그야말로 평화를 전쟁으로 몰아가려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 고위직의 망발은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는데, 심지어 냉면을 만드는 옥류관의 주방장까지 나서서 우리 대통령과 정부 고위직 인사들을 향하여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어댄다. 북한은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이다. 북한은 3대째 세습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과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범여권의 170여명의 국회의원들은 ‘종전을 선언 하자’고 한다. 종전(終戰) 선언은 북한으로 하여금 침략의 기회를 더해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6.25와 같은 전쟁을 통한 비극은 단호히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에 대하여 무조건 낮은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맹수를 조련하려면 온정(溫情)으로는 안 된다. 조련사에게는 맹수보다 강한 힘과 조련방법이 있어야 한다. 맹수에게 약점을 보이면 그 맹수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 우리는 살인, 폭력, 독재의 김일성 정권이 만들어낸 6.25와 같은 전쟁을 다시 겪지 말아야 한다.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올해 진정으로 한반도에 평화적 통일을 원한다면, 대북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햇볕정책’ ‘관용주의’ ‘온정주의’로는 안 되니, 유엔군으로 참전하였던 국가들과 특별히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고, 원칙 있는 대북관계롤 통하여 북한 당국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천부적 인권마저 유린당하는 상황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선제적인 방법으로 북한을 압도해 나가야 한다. 한국 교회도 유대 나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던 것처럼, 북한 주민의 자유와 공산 치하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며, 평화적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일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평화는 북한 주민들이 70년 넘게 공산주의 독재, 김씨 왕조의 독재와 억압 아래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북쪽의 일,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 기나긴 세월, 극한 고통과 인권 유린으로부터 북한 주민을 구해내야 하는 시대적, 역사적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정권에만 맡길 수 없는 엄정한 국가·국민·시대적 사명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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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7
  • 대북 전단 살포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난 4일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으로 알려진 김여정이 남한의 민간에서 보내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하여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북 전단으로 인하여 상당히 괴로운 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런데 통일부에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전단 살포 방지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청와대도 ‘대북 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라며 통일부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의 김홍걸 의원 등 같은 당 소속의 의원 21인은 대북전단 살포를 실제적으로 막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하였다. 또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표는 ‘대북전단 살포 금지 입법을 완료하겠다’고 하였다. 그야말로 짜고 하는 듯한 상황이 나온 것이다.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려는 것은 ‘접경 지역의 긴장과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물론 대북 전단 살포로 지난 2014년에는 남북 간에 긴장감이 있기도 하였다. 남북 간에 상호 심리전으로 행했던 “삐라 살포”는 이미 2000년에 중지되었지만, 시민 단체가 자의적으로 하고 있는 행위는 금하기 어렵다. 이것은 우리 헌법에서 정한 “표현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 대법원에서도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제지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반면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면 제한이 과도하지 않은 이상 제지행위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이를 제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북 전단지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본다. 북한은 한국과의 여러 가지 약속들을 해 왔고, 국제 사회와도 많은 약속을 해 왔지만 제대로 지켜진 것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 북한은 지구상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로 긴장을 조성하고 평화를 깨고 있으며, 북한 주민들에게는 가장 심한 인권침해로 악명을 높이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폐쇄된 나라로 알려진다. 그런데 대북 전단을 통하여 북한 정권의 실상이 주민들에게 알려지고 있어, 이에 대한 강한 불만을 김여정을 통하여 나타낸 것이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뼈아픈 일이 될 수도 있겠으나, 북한 주민을 위하고 평화 통일이 된 이후를 생각한다면, 민간 차원의 북한 실상 알리기는 우리 정부가 막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법으로 규정하여 막으려고 하니, 국제 인권 단체들의 비난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이를 ‘끔찍한 일’ ‘터무니 없는 일’ ‘타당한 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는 체제가 다르다. 북한은 일인 독재에 의한 공산주의 국가이며,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보장된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것을 대북전단 살포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연일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미운 것처럼...표현의 자유를 떠벌이며 아닌보살하는(시치미를 떼는) 남조선 당국자들의 꼬락서니가 더욱 격분을 자아낸다’고 하고,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대통령을 겨냥해 ‘달나라 타령을 하고 있다’고 조롱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터무니없는 비난과 공갈·협박이 공허하게 됨을 보여주어야 하며, 교묘하게 남남을 이간질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한 태도를 통하여 보여 주어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이 어설프게 민간에서 행하는 남북 전단 살포를 제지하거나 법으로 막으려고 한다면 북한의 기만술에 넘어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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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2
  • 한국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우수성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 미상의 폐렴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전세계로 확산되어 지난 11일 현재 215개 국가 및 지역에서 745만 1532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41만 8872명이 사망했다.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는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과 추적 및 격리로 환자 발생을 차단하는 것이 유일한 관리 수단이다. 코로나19는 감염 초반에 감기와 유사한 가벼운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무증상 감염과 증상 발현전 감염도 흔하므로 대규모 진단을 통한 감염자의 확진이 필요하다. 한편 코로나19의 진단을 위해서는 현재 분자진단법이 사용되고 있고, 국내에서 개발된 분자진단 시약의 우수성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많은 국가에서 수입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감염을 일으킨 신종 감염병으로 미리 만들어진 진단키트를 사용할 수 없고, 새로 개발해서 생산해야 한다. 분자진단법은 목표가 되는 유전자의 서열만 알면 수일 내에 ‘시발체(primer)’의 제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약의 성능은 시발체의 설계와 함께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이 되므로, 개발사의 다양한 경험과 기술이 요구된다. 국내에서는 2009년 신종 플루의 대유행 때, 분자 진단에 사용되는 ‘real-time PCR’ 검사 장비가 대규모로 보급되어 분자진단을 감염병 진단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신종 플루가 종료된 이후에도, 보급된 검사 장비를 활용한 분자 진단 검사에 대한 진단검사의학 분야의 다양한 요구가 있었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국내 업체의 적극적인 기술 개발 및 의료 현장에 대한 도입을 통해 감염병 분자 진단에 대한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호흡기 감염, 장염, 중추 신경계 감염 등의 주요 감염 질환에 대한 분자 진단이 활성화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경험들이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대응 및 진단 시약의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경험과 질병관리본부 및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등의 공조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민간 의료기관에서 사용 가능한 진단 키트를 제작하여 임상 평가를 시행했고,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시행했다. 또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임상 검체를 활용해 진단 키트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기업들과 병행함으로써 국내에서 개발된 진단키트에 대한 발전을 도모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만족할만한 성능을 가진 코로나19 진단키트의 개발로 연결되었고, 현재는 전세계 여러 나라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코로나19 진단 키트에도 숙제는 남아 있다. 의료 시장은 매우 보수적인 시장이고, 의료의 특성으로 인해 신뢰의 상실이 시장의 퇴출로 연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성공을 기반으로 많은 회사들이 관련 제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해외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국가에서도 K-방역 및 K-바이오라는 이름으로 국내 업체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다만 새로 개발되는 제품의 경우는 아직 시장에서의 평가를 충분히 거치지 못한 것들이 많으므로, 엄밀한 평가를 통한 믿을 수 있는 제품의 수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신뢰도 높은 제품의 수출만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K-방역 및 K-바이오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개발된 제품에 대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활용한 엄밀한 평가를 거치도록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 시점에 가장 먼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이 높은 품질의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생산하고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우리가 다른 국가들에게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도록 계기를 제공한다면 ‘사람을 살리는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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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2
  • 동성애퀴어행사 반대가 혐오표현으로 인권침해라는 서울시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
    동성애퀴어행사 반대가 혐오표현으로 인권침해라는 서울시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 결정은 부당한 압력이다 지난 해 5월 7일 서울시 소속 공무원 17명은 서울시가 동성애퀴어행사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신고 시 이를 불수리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의 주장은 ‘성소수자 행사라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음란한 행사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연한 주장이다. 서울광장은 모든 서울시민이면 사용할 수 있고, 그 사용에 있어 규정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예년의 서울광장에서 벌어진 동성애퀴어행사를 보면 상당히 음란한 모습들이 연출되었는데, 과도한 복장과 노출 등이 나타났고, 성 기구 등을 판매하는 등, 일반 시민이나 아동·청소년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상당 수 있었다. 그래서 이를 보다보다 못해, 서울시 다수 공무원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낸 것인데, 이에 대하여 서울시 시민인권침해구제위원회(위원장 좌세준. 이하 구제위)에서는 올해 3월 10일 보도자료를 통하여 양식 있는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하였다. 그 내용은 “서울특별시장은 성소수자 등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발생하지 않도록 혐오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울특별시 공무원 복무조례’를 개정하여 차별 및 혐오표현 금지에 대한 조항을 신설할 것을 권고 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구제위가 동성애자들만을 위한 주장이며,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부당하고도 심각한 압력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지난 3월 23일 서울시 공무원 17인은 서울시장에게 “이의신청서”를 낸 상태이다. 이의를 제기한 이유로는 “구제위가 주장하는 ‘혐오’란 말은 합의된 정의가 아니다. 유엔과 유럽공동체 등 국제기구에서도 혐오 표현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나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바, 아직 그 개념조차 정해지지 않은 차별·혐오를 근거로 헌법에서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도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 보호영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2019.11.28.자 2017헌마1356 결정) 현재 우리나라는 ‘혐오표현’이라는 이유로 이를 제한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구제위는 혐오의 대상 혹은 특정된 사람에 대한 표현이 없는데도, 공무원들이 ‘성소수자’ ‘특정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선동하며 고취한다고 하고 있지만,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고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금지하는 차별·혐오 표현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것을 인식하였거나 최소한 인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인권침해 결과가 발생하는 표현임을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2017헌마1356) 구제위가 양심 있는 일부 공무원들을 겨냥한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다수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은 허용하라는 식의 역차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서울시의 용기 있는 일부 공무원들의 ‘이의 신청’을 서울시장은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며, 헌법과 법률에도 근거가 없고, 서울시의 열린광장사용 규정에도 어긋나는 것을 반복하여 허용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동성애퀴어행사가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연기(延期)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연기가 아니라 아예 서울 시민들의 자산이며, 모든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행사만을 수리(受理)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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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1
  • 김성훈 변호사, 교회 건물도 회생절차를 통해 지킬 수 있다
    최근 한국교회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은 교회나 미자립 교회들이 전통적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한 교인들의 감소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대형 교회라 할지라도 재정 자립도가 낮은 교회들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축 등으로 인한 부채가 있는 교회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어려운 교회 상황들을 이용하는 이단들도 있어, 교회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교회 같은 이단은 지난 2007년부터 단독건물을 세우면서, 상당수의 기존 교회 건물들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약 150여 개의 종교시설을 전국에 세웠는데, 그 중에 절반가량은 기존의 교회들을 매입하거나 경매를 통해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이 기존의 교회 건물을 매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자신들이 이단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게 되고, 기존의 신자들을 흡수할 수 있어 교세를 늘리고, 지역에 자신들 세력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경매로 나온 교회들을 싼 값으로 매입할 수 있다는 등의 이점을 이용하는 것으로 본다. 어찌되었든지 교회는 이단들에게 교회 건물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대개의 교회들은 교회 재정이 어려워져 금융권이나 채권자들에 의해 소유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속수무책일 경우가 있는데, 교회에도 회생의 기회가 있음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교회가 “회생절차 개시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포괄적 금지 명령으로 금융이자, 채무, 일체의 비용이 지출되지 않음으로 교회의 부담을 줄이고, 교회운영도 하면서 회생의 수순을 밟아갈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 진단과 법원의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평가를 얻어내야 한다. 회생절차를 신청한 교회가 모두 회생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교회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과 신앙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또 이단자들에게 넘어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회생절차는 어떻게 밟는가? 우선은 필요한 서류를 갖춰야 한다. 이를테면, 회생절차개시신청서, 대표자 심문사항, 채권자 목록, 조사보고서, 회생계획안을 세워서 법원의 결정문을 얻으면 회생절차에 들어가는 것이다. 교회 가운데 소중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무리하거나 방심의 결과로 재정적 어려움을 당한 교회들도, 법적인 보호 아래에서 교회도 지키고, 이단자들의 발호도 막고, 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회회생 상담 문의 김성훈 변호사 010-2017-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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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06-10
  • [삶의 7단계 법칙]사람의 본분
    누군가 어떤 물건을 만들 때는 그 필요한 용도를 생각하고 만듭니다. 아무 뜻 없이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집을 지을 때는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의자를 만든 것은 편히 앉기 위해서, 가방은 무엇을 담기 위해서 만들고, 자동차는 타고 다니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이같이 결국 만든 이의 목적과 만들어진 물건의 사용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 창조하신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된 사람은 그 뜻에 맞게 사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본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_히브리서3:4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내 생각, 내 뜻, 내 방법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 무관한 삶이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_창세기1:27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_골로새서1:16 이제 하나님의 뜻하신 창조 목적대로 지어진 우리가 꼭 해야 할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 경외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 첫째 사람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지존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땅히 경외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군의 왕으로 모시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과 힘을 다해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자신이 주인 된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방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_전도서12:13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_시편76: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_잠언19:23 지혜의 근본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_잠언9:10 ▣ 찬양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찬송하게 하려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인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_이사야43:21 호흡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선하신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는 것이 사람의 사는 이유입니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_시편148:3~5 호흡 있는 자는 찬양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_시편100:1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_시편150:6 ▣ 영광 드리라 하나님은 영광 받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인 것입니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_시편29: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_고린도전서10:31 *나는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_이사야48:11 ▣ 예배하라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하늘의 왕께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을 드리며 찬양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_시편22:27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_시편29:2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_시편96:9 ▣ 감사하라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시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은 물론 부족함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도 감사를 잃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_시편69:30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_시편100: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_시편136:1 ▣ 충성하라 신하는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입니다. 내 생각, 내 뜻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충성 된 자를 찾고 계십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_시편101:6 충성 된 자는 작은 것에도 충성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자는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충성 된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_잠언25:13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_누가복음16:10.12 ▣ 사랑하라 사랑은 사람의 본분 중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이며 존재의 목적이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충성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_신명기6: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_마태복음22:37~38 이웃을 사랑하라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_마22: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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